관리자
2012-02-03 09:36:22조회수 : 1,777
“딸이 복직 축하한다고 써준 메모 잉크도 안 말랐는데 또 잘렸네.” 포항지부 진방스틸지회 정진명 조합원의 말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정 조합원은 3년 여의 투쟁 끝에 지난 해 8월 복직했다. 아빠가 복직하던 날 딸은 “아빠는 아빠 일 할 때가 제일 멋있다”는 응원의 메세지도 보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회사는 지난 해 12월 정 조합원을 ‘징계해고’했다. 벌써 세 번째 해고다.
“내가 딸 초등학생 때 해고됐다. 딸 사춘기 시절을 아빠가 해고자 신분으로 보냈는데, 어디가서 기도 못 펴고 힘들었을 걸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해고된 사람 본인이야 견딘다 하더라도 해고로 인해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 조합원은 징계가 과도하다며 회사에 재심 청구를 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처음 징계해고를 통보받고 가족에게 알리지 못했던 그는 재심 결과가 나온 뒤 어렵게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다시 기약 없는 해고 생활 시작이다. 지난 해 1월 태어나 당시 해고자였던 아버지에게 복덩어리 역할을 했던 어느 조합원의 세 쌍둥이 아이들은 지난 15일 첫 생일잔치를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번엔 ‘정직자’ 신세로 돌잔치를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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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8월 복직한 정진명 조합원의 딸이 아빠의 출근을 축하하며 지갑에 넣어준 편지. 이 편지의 잉크가 바래기도 전에 회사는 정 조합원을 또 징계해고 했다. 신동준 |
벌써 세 번 째 해고
지난 해 5월 대법원은 진방스틸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최종 판결했다. 그 판결 적용자 15명은 지난 해 8월 현장에 복귀했다. 하지만 회사가 제기한 업무방해에 대한 같은 달 11일 2심 판결에서 법원은 이들의 유죄를 물어 벌금형을 결정했다. 그리고 회사는 대법원에 대표로 항고한 두 명을 제외한 조합원 13명을 이를 근거로 징계했다. 해고 두 명, 정직 1~3개월 11명.
그런데 2심 판결 때 법원은 희한한 결정을 덧붙였다. 1심 판결 때 조합원들과 동일하게 벌금형을 받았던 노동자 중 일부가 이번에 선고유예된 것. 그리고 2심 법원은 그 이유로 “깊이 반성하고 있고, 회사와 합의되거나 노조를 탈퇴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노조탈퇴를 법원마저 부추긴 꼴이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를 탈퇴한 해당 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감봉 수준의 징계에 그쳤다. 금속노조 조합원만 법원에서 큰 형량을 선고받고 회사에서마저 쫓겨난 셈. 이들 조합원들은 “노조 탈퇴해야 형량을 유예해주는 법원이나 노조 탈퇴해야 합의해주는 회사나 모두 노조 탄압”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정길 지회장도 이번 징계를 두고 “명백히 노조를 없애겠다는 회사의 목표에 따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번엔 해고자가 두 명에 불과하지만 1, 2차 정리해고에 이은 실질적인 세 번째 해고다. 한국주철관공업이 회사를 인수하고 4년 동안 무려 세 차례나 해고를 자행하고 있다.” 정경구 지회 사무장의 설명이다. 이어 정 사무장은 “해고는 살인이라는데 그 해고가 벌써 몇 번째냐”고 분통을 터뜨린다.
법원마저 노조탈퇴 부추긴다?
지회는 회사가 또 다시 정리해고 수순을 강행하려는 것 아니겠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정 사무장은 “회사는 노조를 없애는 것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인원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해고됐다 복귀한 사람들이 모두 정직 이상의 징계를 당하고 다시 현장 밖으로 내쫓겼다. 사실상 회사 입장에서 정리해고 수순을 밟기 위한 준비는 모두 끝낸 것이며 징계받은 조합원들은 정리해고 1순위 대상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 사무장이 강조한다.
그리고 지회는 또다시 싸움을 준비중이다. 최 지회장은 “대법원 판결 기다렸다가 복직하는 건 우리의 완전한 승리는 아니”라며 “우리의 힘으로 돌파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회사의 회유와 협박에 노조를 탈퇴한 이들도 있고 극심한 탄압과 징계에 시달리다보니 조합원들도 많이 지쳐있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조합원들이 똘똘 뭉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말하는 최 지회장은 지난 해 말 새롭게 지회장직을 맡았다. 그리고 최 지회장은 “지금은 주춤하고 있지만 조합원들이 뭉치고 투쟁해서 승리할 것이며 노조를 다시 힘 있게 세울 것”이라고 말한다.
최 지회장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조합원 교육사업”이라며 “교육이 제대로 진행될 때 조합원들이 더 힘을 가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조합원 교육용 책자를 만들어보겠다며 지갑에 늘 책 제본 업체 번호를 넣어 다닌다는 최 지회장. 회사의 뜻대로 그냥 회사를 떠나지는 않겠다는 이곳 노동자들.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