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노동자 투쟁
(김진순/노동자교육센터 부소장)
IMF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정리해고, 구조조정, 계약직, 임시직 비정규직 증가를 대표적으로 떠올릴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발전노조의 민영화를 반대했던 투쟁, 전교조의 2001년 제 7차 교육과정 반대 투쟁이 생각날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어떤 배경으로부터 출발하고 전개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에 도입과정과 진행되고 있는 내용을 알아보고 신자유주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하면서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중요성을 확인하자!
1. 자본의 위기가 오고 곧 위기극복을 위한 시도를 한다.
1) 공황이란?
- 공황의 원인은 자본주의의 생산과 소비의 모순이자 자본주의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 사이의 모순에 원인이 있다.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은 노동자 민중들에게 되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들 더 착취해서 이윤을 확대한다.
☞ 계획생산이 불가능한 자본주의 생산은 이윤이 확보여부에 따라 생산이 결정된다. 빈곤한 노동자들의 소비력은 한계가 있는 가운데 이윤이 많은 상품생산을 향한 자본의 경쟁은 무제한적인 생산력의 확장을 초래하고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소비 한계 이상의 생산의 과잉상태를 만든다.
- 과잉생산은 자본에게 적당한 이윤율이 확보되지 않고 이윤율을 저하시킨다. 따라서 과잉자본이 발생하여 금융위기가 오게 된다. 자본의 일부 파산과 생산의 중단(감소), 실업률 급상승, 주식과 물가는 폭락한다.
- 생산의 부문간 불균형, 생산과 소비간의 충돌, 과잉생산, 이윤율의 저하를 필연으로 유발하고, 이러한 모순이 일정한 기간에 걸쳐서 누적, 격화되어 폭발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적 경제위기, 공황이다.
- 이러한 공황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난다. 공황이 전형적으로 격화된 형태가 1930년 대공황이었고 재격화되고 있는 것이 1970년 이후이다
2. 자본주의 세계경제발전 과정
자본주의는 주기적인 공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군수산업의 독점화와 전쟁, 노동자에 대한 착취수단 강화를 추진해 왔다. 세계 자본주의 전개과정을 통해서 알아보자!
■ 1기(1789~1870~1년) : 초기 산업자본주의 형성
1789년 산업혁명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한 대규모 공장이 발전하여 공장제도를 확립시켰고, 공장의 도시 집중을 초래한다. 영국을 선두로 시작된 자본주의 세계의 발달로 전 세계는 자본주의화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 속도는 나라마다 달랐다. 초기 자본주의는 60여년간 영국만을 선진공업국으로 하고 다른 나라는 농업국이라는 국제분업관계가 유지되었다. 그 뒤 프랑스, 독일, 미국 등 후발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기계제 대공업이 발전한다. 자본주의가 세계자본주의로 전개되었다.
초기 자본주의는 자유주의 이념이 지배하고 있었다.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상징되는데 이는 시장과 시장에서의 경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제적 재생산과정 외부에서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두면 만사가 저절로 잘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는 봉건적, 절대왕정의 억압과 개인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저항과 그로부터의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해방을 대표했던 사상과 체제였다.
자본주의가 세계자본주의로 전개되면서 공황도 세계공황의 양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최초의 세계적 공황은 1857년 일어났다. 그 당시 공황은 큰 파급력이 없었으나, 1873년 대 공황은 20여년간이나 지속되면서 엄청난 파급력을 가졌고 이 공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자본주의는 산업자본에서 독점자본주의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 2기 (1871~1917~8년) : 산업자본에서 독점자본주의로 전환 - 제국주의 단계로 성장 전화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의 후발 자본주의국들은 1873년 공황을 맞이하여 자본이 급격하게 독점해 간다. 기술의 발전과 주식회사의 설립, 은행으로 자본의 집중을 강화한다. 주식소유자들이 소유권을 독점하도록 하여 독점자본주의를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급속히 성장하고 상품수출경쟁이 격화되었다. 이 시기 세계 자본주의 중심 축도 영국에서 미국과 독일로 이전되었고, 산업 구조도 기술 혁신에 따라 경공업에서 중공업중심으로 발전하였고 대량생산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대량생산으로 거대해진 기업들이 독점자본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독점자본에 의해 이 시기부터 자유경쟁의 의미는 사라진고 국가는 자본의 독점형성을 돕는데 나서기 시작한다.
○ 식민지 분할을 통한 제국주의간의 대립이 격화
독점 형성은 산업과 은행의 결합을 필연화 한다. 거대기업은 고정자본에 투자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은행은 금융자본으로 발전한다. 금융자본과 결합한 독점자본은 투자시장, 판매시장, 원료자원의 확보를 위해서 독점의 세력 범위를 확대하는 세계적 시장 개척에 나서게 된다. 이로 인해 국제적 독점간 투쟁이 시작되고 세계시장을 분할 지배하는 경쟁 심화된다. 결국 세계기장 분할 지배 경쟁은 영국을 선두로 세계의 영토 분할, 자본주의 국가 간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자본주의 국가 간의 식민지 획득경쟁, 재분할경쟁이 심화되면서 제 1차 세계대전(1914년~1918년)이 발발하게 된다. 이 전쟁으로 생산력이 파괴된 유럽은 타격을 받고 영국 중심의 세계체제는 무너진다. 반대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연합군에 차관공여와 수출을 늘린 미국과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 시기 전쟁으로 인한 민족주의적 동원으로 민중들은 전쟁에 총알받이로 나서게 되면서 차츰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반제국주의 투쟁이 활발해지고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이 물결친다. 자본주의 내 노동자 자본가의 계급간의 투쟁이 격화되는 시기이다.
■ 3기 (1918~1970년) :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전환
반독점, 반제국주의 운동이 확대되고 러시아 혁명에 의해 각 국의 혁명운동은 고양되기 시작한다. 민족해방투쟁으로 인한 식민지체계의 위기와 러시아 혁명(1917년)으로 인한 사회주의 성립으로 시장이 축소되면서 자본주의 모순이 확대, 격화되어 세계사상최대의 1930년 과잉생산공항이 발생한다. 이 공황에서의 탈출의 길을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전환에서 찾는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국가에 의한 직접적인 경제개입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국가가 독점조직과 융합하고 독점조직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가는 독점자본주의를 국가독점자본주의자로 한다. 이는 독점자본이 국가를 직접 지배하고 이용하여 높은 독점이윤의 획득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독점자본주의 한 특징으로 기간산업의 국영화로 국영기업 육성을 적극적으로 하여 독점자본들에게 원료, 반제품, 서비스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1930년 대공황은 독일, 일본처럼 파쇼체제를 탄생시키고, 미국에서는 국가의 통제 하에 독점을 강화하는 체제를 만들었고 대표적인 것이 뉴딜정책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고 전쟁에 나설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바로 제 2차 세계대전(1939년~1945년) 발발이다.
○ 국가독점자본주의 내에 새로운 사민주의(케인즈주의) 탄생
2차대전 후 사회주의권이 탄생하면서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두 개의 세계 시장이 탄생하고 식민지체계의 위기가 한층 격화된다. 구식민 체계는 전면적 붕괴과정에 돌입하고 미국의 원조를 중심으로 하는 신식민지 체계가 성립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의 특징은 첫째 경제위기를 극복을 위한 경제의 군사화를 중심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가 현대자본주의에 항상적 체계로 발전한다. 둘째는 국가의 시장경제 적극개입을 통한 사회보장제도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케인즈주의가 대두된다.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하는 사민주의 정책이 펼쳐진다.
■ 케인즈 주의
경제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고전적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에 대안으로 등장. 사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폐해를 줄이고 완전고용, 사회보장, 수요확장 등 국가가 시장경제에 제한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 4기 (1970년대 현대불황~현재까지) : 신자유주의 -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새로운 변종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자본주의는 장기적인 자본축적 토대 위에서 30여 년의 호황을 누린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2차례의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다시 심각한 경기불황(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빠지면서 다시 이윤율 저하의 위기(경제위기)가 도래한다. 다시금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자본의 시도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새로운 변종인 신자유주의이다.
3.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의 위기, 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자본주의 경제 이념이다.
1) 신자유주의 등장 배경
① 70년대 중반부터 세계자본주의체제가 심각한 구조적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면서 브레튼우즈 체제(IMF체제)의 위기,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런 구조적 불황의 원인이 국가 폐해, 즉 관료주의와 이윤원리의 침해, 사회복지의 남용, 자유로운 시장의 훼손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케인즈주의, 사민주의를 비판하고 결국 시장으로부터 국가개입을 축출할 것 요구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서 국가개입이 완전히 축출되지 않았다. 국가개입의방향이 군사수요의 증대로 전환되었을 뿐이다.
② 결국 불황의 부담을 내국의 노동대중 및 제3세계의 노동자, 민중에게 폭넓게 전가시키려는 자본위기의 해결책이다. 이를 신자유주의라 한다.
③ 신자유주의는 개방화, 탈 규제화, 민영화, 유연화 등을 통해 관철해 나간다.
즉 독점기업을 위한 감세와 사회복지예산의 감축, 대외적 개방확대와 상품서비스, 자본, 금융의 자유화, 노동의 유연화로 나타난다.
신자유주의는 거대 독점체제(초국적 기업), 금융체제(세계금융시장)가 더 이상 국가와 노조의 개입을 받지 않고 국가나 민족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면서 지구전체를 대상으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것이다.
④ 80년대 초 영국의 대처리즘, 레이거이즘이 그대표적인 예이다.
○ 영국대처리즘의 노동정책 - 노사관계를 탈 노조화 하는 것이다.
1980년부터 노조의 단체행동권이 크게 제약하는 노동법 개악을 한다.
- 80년 파업 시 허용되어 오던 파업이탈자 감시요원, 즉 피켓팅의 면책 범위를 축소.
- 90년에는 다른 고용주에게 영향을 미치는 단체행동, 혹은 다른 노동자들에 의한 연대지원파업 등 2차 단체행동을 금지. 파업에 불참 조합원을 노조가 제재할 수 없도록 조합원의 파업거부권 법으로 명시
- 93년에는 단체행동에 의해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노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제정. 단체행동에 돌입하기 1주일 전에 사용자에게 단체행동의 범위와 기간을 통보.
- 94년 영국 고등법원은 사용자의 요구 시 노조는 파업투표에 참가한 노동자의 이름과 주소를 제출해야한다는 치욕적인 판결까지 내림
- 노조활동에 치명타를 입힌 것은 클로즈드샵의 폐지와 노조비 원천공제체계의 금지조치였다.
○ 84년 대규모 광산 노동자 파업
- 1년 간 파업투쟁이 지속될 수 있는 광업노동자들의 대중적 물질적 힘을 동원하는데는 성공하였지만 다른 산업부부문의 노조나 사회의 진보적 정치세력과의 연대를 동원해 내지 못함으로써 광업부문의 구조조정으로 영국의 광업노조가 무너지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영국의 노동운동과 노동당은 쇠퇴, TUC의 정치적 분화가 가속화되어 TUC내 대다수가 대처정권과의 협상에 찬성하게 된다.
한국사회도 이 세계적 추세에서 예외는 아니며 특히 IMF 체제로 들어오면서 신자유주의 체제로 본격 재편되고 있다.
4. 한국경제와 신자유주의
한국경제도 세계공항에 직접적 영향을 받아왔다.
1) 원조, 차관 경제에서 박정희 정권의 수출위주의 경제성장정책
- 이 시기 공업화의 재원은 한일협정의 타결에 의한 ‘청구권 자금과 그에 기반 한 민간 및 공공 차관자금, 국제금융 및 원조기관으로부터의 차관, 원조 등이었다.
- 더 나아가 인플레이션 및 저곡가 정책을 통한 국내의 강제저축, 수탈뿐만 아니라 월남전 파병과 노동력 수출로 인한 비공식적, 공식적 외화 수입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기초한 덤핑수출로 인한 외화획득도 이 시기 자본축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 69년~70년 공황은 파쇼입법(수출자유지역의 창설. 확대 - 외국인 투자기업에서의 노동3권 박탈을 위한 특별입법), 72년 기업의 부채를 면제, 경감시켜주는 ‘8.3조치를 취하고 영구 집권을 위한 \'10월 유신\' 단행
- 특히 8.3조치는 독점자본으로서의 재벌체제를 위기로부터 구제, 강화, 발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재벌들은 오늘날 재벌의 기본구도가 된다.
* 이 시기가 1970년대 세계자본주의의 커다란 전환기였다. 71년 닉슨 독트린, IMF체제(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스테그플레이션(공황. 침체와 악성 인플레이션의 결합) 발생
2) 1970년대 후반 몇 년간은 한국의 독점자본은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성장
- 1979년 율산 그룹부도는 직접적이고 엄청난 파장을 불러옴
- 이유는 재벌의 종합상사를 독려 지원하였는데 이들은 피복, 잡화 등을 덤핑가격으로 서유럽이나 미국에 집중적으로 수출하였고 정부는 이들 종합상사의 수출에 대해서 연리 8%의 저리자본을 무제한 지원. 이때 시장의 일반이자율이 25%를 넘어가고 있었다.
- 종합상사들은 수출지원 금리와 시장이자율과의 차액 덕분에 출혈수출, 적자수출, 덤핑수출을 마다하지 않았고 더구나 해외현지의 상품은 팔리지 않고 창고에 쌓여나갔다.
- 제2차 오일쇼크(78년)가 일어나 자본세계시장을 악화시켰다. 79년 공항은 경공업, 중공업 할 것 없이 모두 과잉생산이 발생했다. 특징은 한국의 공항이 미국, 일본 등 선진국가에 비해 먼저 공항이 발생, 공항 및 침체의 장기화 (85년까지 6년 간 지속됨)
3) 86년부터 3저 호황을 맞게됨.
① 아시아게임의 특수, 선진 7개국(G7) 각료회의에서 85년 9월에 합의, ‘저달러, 저금리, ‘엔고’ 정책의 영향으로 국제금리가 일제히 하락하고 ‘엔고’현상이 급격히 진행되었다. 이런 상황은 해외차관과 원자재수입에 의존하는 한국경제를 섬유, 가전제품, 자동차, 조선 등에서 생산과 수출이 강화되면서 3저 호황을 맞게 되었다.
② 올림픽특수도 작용하여 이 호황은 89년 초까지 지속된다.
4) 89년 하반기부터 호황은 붕괴되고 95년 잠깐 호황이었다가 시장개방으로 다시 97년 경제위기를 맞게 되는데 외환위기로 표현된다.
■ IMF 외환위기의 배경
① 구조적인 한국경제의 문제가 배경이다.
=> 전근대적인 족벌지배와 차입경영으로 특징 지워지는 재벌체제, 정경유착의 정치, 외국에 종속적인 재생산구조로 나타나는 한국경제의 낡은 발전모형이 90년대 세계화라는 환경변화에 부장용이 크게 증폭되어 나타나게 된다.
②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전략과 OECD 가입은 한국사회를 94년부터 96년 사이에 총외채를 520억 달러에서 1080달러로 두 배로 늘어나게 했다. (97년 말의 외채가 무려 3.5배로 증가) 특히 종금사들은 외채를 금리 차를 노리고 동남아에 투자했다가 동남아 위기가 터지자 연쇄작용에 의해 외환위기를 수입하게 된다. 94년 세계은행 총회에서 “한국과 태국이 국제자본흐름에 대한 장벽을 너무 빨리 제거하고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고 있어 외환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는 경고는 정확히 적중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게 되고 이 부채는 결국 한국사회의 민중의 차지가 되었다.
신 군부 이후 세계 자본은 한국에게 국가가 자본에 불필요한 개입 반대, 합리적 경영, 개방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경쟁력강화(노태우) → 세계화, OECD가입(김영삼) → 시장경제의 중시 → 구조조정(김대중)
한국은 이제 신자유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국가가 되었다.
5. 신자유주의는 한국의 노동자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
자본가의 노동통제 방법의 변화는 자본의 보다 많은 이윤을 만들어내기 위해 통제방식을 변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힘과 투쟁을 통해서도 많이 변화된다. 자본의 노동자 통제 방식의 변화를 살펴보자
1)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에는 병영적 통제방식이었다.
이 당시에는 노동자의 힘이 집약되지 못하였고 그래서 전근대적인 방법인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자본가 마음대로 노동자를 부려먹을 수 있었고 많은 이윤을 축적할 수 있었다.
2) 87년 노동자 대 투쟁 이후에는 유연화 전략으로 변화되었다.
신자유주의 도입 노동자들의 거센 투쟁으로 인해 그동안의 병영적 통제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판단 하에 통제 방식을 변화시킴. 자본의 유연화 전략을 법제도로 보장받기 위해 정리해고,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시간 등을 법제화하기 위한 작업을 하였다.(92년부터 경총에서 정부에 지속적인 요구)
■ 신노사문화
각종 교육, 사내 써클 지원, 각종 문화행사 개최 등으로 기업문화를 바꾼다는 운동으로 기업의 경영이념에 맞는, 자본가의 입맛에 맞는 인간형을 만들기 위한 정책이다. 김영삼 정권의 유연화 전략 도입을 시도였다.
3) 노동법의 개악 시도는 88년부터 노동자들의 노동법개정투쟁과 계속 부딪혀 왔다.
① 92년 근로자파견법 입법 시도를 ILO 공대위로 막아냄.
② 97년 날치기 노동법에 항의한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으로 정리해고 등 유연화 전략 법제화는 막아냈으며 세계의 노동자를 또 한번 놀라게 하였다.
4) 97년 말 경제위기와 IMF 구제금융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 진행된다.
① 때맞춰 등장한 김대중정권은 모든 국민을 국가 경제 살리기 분위기로 몰아가면서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서 한국경제를 위기탈출,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김대중정권은 당선되자 곧바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법을 도입했다.
② 정권과 자본은 이런 상황을 초국적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의 편입 심화와 구조조정(금융공적자금 조기 투여, 퇴출, 금융지주회사, 공기업의 민영화 및 매각, 재벌기업 해외 매각)을 통해 돌파하려 하고 있다.
5) 신자유주의의 전개 내용
개방화(세계화), 탈 규제화, 민영화(사유화), 유연화를 핵심내용으로
신자유주의 특징
진행 내용
고용 유연화
정리해고 / 파견근로제 도입(비정규직 확대)
임금 유연화
성과주의적 임금체계 도입 / (연봉제 도입. 팀제 도입)
시간 유연화
탄력(변형)시간제 도입
작업장 유연화
다기능화(린 생산체계) / 작업장 배치전환 일상화
품질관리운동(품질실명제) / 작업외적 통제 강화(친절운동, 체조, CCTV)
일방적 노사관계 구축
(노동자 배제정책)
노동조합의 대한 공격 / 단체행동권 제약 / 노사정 협의기구 활용
신기업문화 확산
기업교육, 사원 워크샵 활성화 / 제안제도(포상) 활성화 / 각종 소모임 지원 및 활성화
공기업 사유화
공기업 매각 => 기간산업의 사적소유
사회복지제도 부정
자본가들의 감세 정책으로 예산 축소 / 사회보장 제도 축소
시장의 완전경쟁과
세계화
규제 완화,
자본의 자유이동을 위한 시장 개방=> 초국적 자본의 지배 강화
○ 교육시장화도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교육재정 6%확보의 대선 공약을 어기고 교육정책에 시장이론을 도입하는 것이다. 7차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공교육시스템개편, 자립형 사립학교(귀족학교 창출), 학교 서열화 정책, 다자격 부전공제도, 교직개방, 계약제, 기간제 확대, 성과급, 연봉제 도입 등 교직 유연화정책, 국립대 구조조정안 및 교․사대 통폐합 안, 기업형 대학 도입 등 교육 시장화를 전면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6)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① 노동자에 대한 이데올로기 전략
- 노동자에 대한 개별화 전략
노동계급 해체 전략 => 프로의식, 능력주의, 출세주의
- 구조조정을 불가피한 것으로 수용하는 전략
‘대립적인 노사관계 전근대적?’,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다. 투쟁해봐야 너희들만 손해다.’ (대세론)
② 자유만능/경제만능/이윤만능 유포
시장에서의 무제한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평등이 파괴)이며, 경제란 생산, 소비, 분배의 철학이 없는 이윤만을 추구하는 경제다.
=>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보편 타당한 이념체제가 아니다.
6. 노동자 연대투쟁을 통해 희망을 만들어 나가자.
1) 신자유주의는 세계자본이 노동자, 노동조합을 향한 무차별적 공격이다.
사업장 내, 개별자본의 문제가 더 이상 아니다.
2) 조직내부를 강화하면서 민주노총의 강화하고 집중투쟁 할 때이다.
사업장내, 개별자본의 문제가 이제 더 이상 아니다.
① 개별 사업장의 구조조정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② 개별 사업장의 구조조정이 끝났다고 공동투쟁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③ 96년 총파업투쟁을 했던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다. 다시 조직력을 갖추어야 한다.
3) 계급적 연대와 투쟁을 강화하자!
세계노동자 연대를 통한 투쟁을 강화하자!
신자유주의는 전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지구적인 연대로 대응해야 한다.
■ 세계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에 맞선 투쟁에 떨쳐 일어서고 있다.
예) 1996년 한국의 - 정리해고법 날치기 통과에 저항하는 총파업투쟁
97말-98년 프랑스 실업자 투쟁
99년 12월 시애틀(WTO 각료회의) - 뉴라운드 협정 저지
2000년 체코 프라하(IMF 연차 총회) - 총회 일정 단축
2002년 노동절 독일 노동자 투쟁 등 살아나는 유럽의 노동자 투쟁
“체제에 새로운 이름을! ”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을 향한 투쟁을 해야만 한다. 노동운동은 반자본주의적이고 노동자친화적인 이데올로기와 조직을 건설해야한다.
(지방공무원노조위원장(AFSCME) 제네랄맥엔티, WTO에 반대하는 시애틀 투쟁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은 전 민중을 적으로 만드는 경제이념이므로 다수의 저항을 불가피하게 생산하고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 정책은 파국을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