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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연대실] 한국지엠지부, 연대하는 ‘말벌 아저씨들’

사회연대실 | 2025-02-12 13:05:42

조회수 : 1,478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5.02.12 11:35
  •  수정 2025.02.1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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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한국지엠 위한 사회적 힘 키우고자
공장 안팎 다양한 사회 연대 사업 벌여

조금 전까지 카메라 앞 수줍어하던 ‘자연인’이 꿀통에 침입하는 말벌을 보자 돌변한다. 누가 말을 걸든 말든 말벌을 쫓기 위해 산속을 내달린다.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이 된 ‘말벌 아저씨’는 탄핵 정국에 다시 떠올랐다. 지난해 말 ‘전농 TV’를 통해 남태령에서 경찰에 막힌 농민들의 트랙터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앞뒤 재지 않고 튀어 나갔다. 말벌 아저씨처럼 그냥 달려 나가면 된다는 걸 알게 된 ‘말벌 동지’들은 민주노총의 한강진 철야 농성에서 ‘인간 키세스’가 됐다. 투쟁 중인 거제 조선 하청노동자들, 불탄 공장 위 고공농성 중인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들 곁도 지켰다.

노동계에도 떠오르는 말벌 아저씨들이 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다. 한국지엠지부는 국내 완성차 노조 중 처음으로 한국지엠 공급망(Supply Chain)에 속한 노동자들을 연결해 공급망 연석회의를 만들었다. 또 한국지엠 부평공장에 흐르는 세월천 생태 복원, 지역의 역사와 함께한 우리나라 최초 완성차 공장인 부평 2공장 아카이빙(조사·기록·전시)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역뿐 아니라 연대가 필요하다면 전국 곳곳으로 달려간다.

적당히가 아닌 연대는 눈에 띄었다. 금속노조 중앙집행위원회(중집)는 지난 11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한국지엠지부를 모범 조직상 후보로 추천했다. 금속노조 중집은 “한국지엠지부는 한국지엠비정규직지회와 원·하청 연대를 필두로 인천 지역에서 연대,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도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투쟁, 아리셀 투쟁, 민주유공자법 제정 투쟁 등 지난해 70회가 넘는 투쟁에 모범적인 연대 투쟁을 전개했다”며 “무엇보다 윤석열 탄핵 투쟁 국면과 빛의 혁명 과정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모든 집회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투쟁의 모범을 보였다”고 모범 조직상 후보 추천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1월 28대 집행부의 출범 이후 한국지엠지부가 1년여간 쌓아온 ‘사회적 힘’을 되짚어 봤다.

지난 5월 29일 한국지엠 공급망 연석회의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지난해 5월 29일 한국지엠 공급망 연석회의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한국지엠과 연결된 노동자들을 묶다
한국지엠 공급망 노동자 연석회의

한국지엠지부는 지난해 5월 29일 한국지엠 공급망에 속한 노동자들을 연결하는 ‘한국지엠 공급망 연석회의’ 출범을 알렸다. 연석회의엔 금속노조 인천지부,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금속노조 인천지부 GMTCK지회(한국지엠 연구·개발 법인), KM&I지회(부품사), SH-CP지회(부품사), 부평공단지회(부품사), 한국지엠비정규직지회가 함께한다.

연석회의는 공동 소식지를 통해 “외투기업인 GM 자본이 경영하는 한국지엠과 관련된 완성차, 연구·개발, 부품사, 판매, AS업계 소상공인과 노동자의 삶이 벼랑 끝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며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외투기업을 감시·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는 정치권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자기 일을 할 수 있도록 한국지엠 공급망으로 연결된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서 하나 된 목소리로 정의로운 산업 전환, 미래차 특별법 시행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자 한다”고 출범 배경을 밝혔다.

연석회의가 아직 가시적인 사업 성과를 내진 않았지만, 자동차 산업전환이란 구조적 변화 속 공급망 노동자들이 서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는 점 자체에 의의가 있다. 안규백 한국지엠지부 지부장은 “이런 시도 자체가 처음이라 서로에게 아직은 낯선 부분이 많이 있다”면서 “하지만 서서히 경험치가 쌓이고 그 과정에서 서로 신뢰가 쌓이면 더 나은 미래가 기대된다”고 했다. 연석회의는 먼저 ‘한국지엠 공급망 지도’를 만들 계획이다.

안규백 지부장은 “기존의 폐쇄적이고 경직된 원·하청 관계 등 현실적인 문제도 분명히 있다”면서 “예를 들면 한국지엠이 원청의 지위를 이용해 연석회의 참석에 대한 압력을 넣는다거나 하청 부품사나 협력사들이 원청의 압력과 별개로 스스로 (노조의 연석회의 참석을) 통제하는 식이다. 이 문제도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풀어갈 일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한국GM 부평공장에 흐르는 세월천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공장에 흐르는 물길을 깨끗하게
세월천 생태 하천화 사업

한국지엠 부평공장엔 세월천이 흐른다. 원적산에서 시작된 세월천은 한강과 만나는 굴포천으로 이어진다. 세월천은 평상시 물이 흐르지 않아 수질 오염이 심각한 상태다. 한국지엠지부는 세월천 복원을 위해 회사, 인천시·부평구, 환경단체에 먼저 관련 논의를 제안했다.

안규백 지부장은 “실질적으로 아무도 관리하지 않고 건천(乾川)으로 방치되다시피 한 곳에 다시 일정한 수량의 물이 흐르게 해야 한다. 그래야 각종 토양 오염으로 인한 악취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결국 비용의 문제일 텐데 회사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노조가 나서면서 지역구 국회의원, 인천시, 부평구, 환경단체, 회사, 노조가 함께한 토론회를 시작으로 함께 ‘세월천 생태복원 TFT’를 공식적으로 꾸리게 돼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지엠지부는 먼저 오랜 시간 오염으로 퇴적된 세월천 바닥을 준설하고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정화를 통해 방류하는 수량의 일부를 세월천 상류 구간으로 끌어 올려 일정하게 흐르게 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세월천이 합류하는 굴포천의 수질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세월천 주변엔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60년 이상 된 라일락 군락지도 있다. 한국지엠지부는 세월천과 라일락 군락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각종 식·생물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해 지역 시민에게 부평공장 일부를 개방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국지엠 부평 2공장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프로젝트단이 부평 2공장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한국지엠 부평 2공장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프로젝트단이 부평 2공장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지역과 함께 성장한
부평 2공장 아카이빙 프로젝트

한국지엠지부는 2022년 11월 생산을 멈춘 부평 2공장의 산업, 문화, 역사적 가치를 기록하고 알리기 위한 ‘아카이빙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른바 ‘모터 타임즈’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부평구문화재단이 재정 지원을 한다.

안규백 지부장은 “부평 2공장은 일제강점기 군용차 생산을 위한 자동차 부품 공장, 일본 패망 이후 1962년 새나라자동차, 1965년 신진자동차 등 유구한 역사가 담긴 공장”이라며 “부평 2공장 생산이 중단된 뒤 막연하게 기록을 남겨놔야 한단 생각은 했는데, 한국지엠과 인천 지역 선배들이 구체적인 제안을 해줘서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찬영 부평구문화재단 대표이사는 “(부평 2공장엔) 부평 공단 전체가 경공업에서 중공업 단지,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역사적인 과정뿐 아니라 어마어마한 인문학적인 스토리도 녹아 있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들어온 과정, 부평과 인천에서 중산층을 형성한 대공장 노동자들이 만든 의료 생협, 공동 육아 등 지역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친 한국지엠 공장에 대한 전방위적인 아카이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규백 지부장은 “(아카이빙 프로젝트에서) 남은 계획의 핵심은 기록의 보존, 안정적인 운영”이라며 “이를 위해선 우선 현존하는 자료, 사료 등을 잘 기록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전시회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미 동종사들이 시행하는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과 클래식 센터 등처럼 향후 인천 지역 내 산업 역사 박물관이나 자동차 박물관이 세워진다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담은 소중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연대는 더 넓게, 더 멀리

연대는 공장과 지역 밖으로도 뻗어가고 있다. 안규백 지부장 등 한국지엠지부 상집 간부 36명은 지난해 단체교섭 기간에 벌인 파업 시간 74시간에 해당하는 금액을 공제해 마련한 재원으로 전태일 의료센터 건립 기금을 비롯해 16개 시민사회단체에 기부했다. 기부 금액은 총 4,210만 원이다.

한국지엠지부는 올해 설 연휴를 앞두고 공장이 불탄 뒤, 물량은 다른 자회사로 옮기면서 노동자만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40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재정 마련 사업을 돕고자 한국지엠 부평공장 1·2·3 식당에서 김을 판매하기도 했다.

김은 총 1,773개가 팔렸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는 “투쟁을 시작하고 한결같은 지지와 연대로 옵티칼 투쟁에 함께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며 “우리 생계를 위한 재정 사업에 발 벗고 나서준 고마움을 표현할 길이 투쟁 승리밖에 없는 것 같다. 동지들이 보내준 지지와 연대로 어려운 투쟁 속에서도 힘이 나고 또 힘을 내보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한국지엠지부는 연대가 필요한 현장 곳곳에서 파란색 지부 깃발을 휘날리며 자리를 지키곤 한다.

지난 1월 10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에서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소현숙 조직부장과 연대하는 ‘희망텐트촌’을 농성장에 함께한 한국지엠지부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지난 1월 10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에서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소현숙 조직부장과 연대하는 ‘희망텐트촌’ 농성장에 함께한 한국지엠지부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한국지엠의 지속 가능성을 향해

한국지엠지부의 사회 연대 사업은 결국 한국지엠의 ‘지속 가능성’이란 키워드와 맞닿아 있다.

한국지엠의 미래는 불안하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중견 완성차 3사 전망 및 공급망 연구〉(금속노조, 2024)에서 “한국지엠은 본사의 생산하청기지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현재의 생산 구조는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라며 “친환경·전기차로 전환을 하려 해도 본사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지 않는 한 전망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저 생산 물량 유지만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 속 의미 있는 전환이나 새로운 모색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사회적 힘을 키우는 일은 결국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생존과도 연결된 문제인 것이다. 안규백 지부장은 “내가 강조하는 노조의 사회적 힘은 결국 한국지엠이 처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면서 “악질 외투 자본의 최전선이기도 한 한국지엠 내부의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사업장에 갇힌 노조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안규백 지부장은 “우리 지부의 사회 연대 사업은 거창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목표가 아니”라면서 “한국지엠 공급망 연석회의의 경우 한국지엠의 매년 추락하는 내수 판매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한국지엠 전체를 구성하는 공급망과 상생이란 멋쩍은 표현보단 나와 가족의 생존 문제에 직결돼 있다. 세월천 생태 복원은 대대적인 지역 생태 복원(굴포천 복원 사업)에 발맞추는 환경 재생 문제와 결부돼 있다. 부평 2공장 아카이빙 사업은 공장 곳곳에 깃든 산업적,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 계승한단 점에서 현재 한국지엠의 브랜드 가치와 결합한다면 (한국지엠의) 문화적 가치로의 결합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노조에 대한 혐오의 시선을 바꾸고자 하는 한국지엠지부의 의지도 사회 연대 사업에 녹아 있다. 안규백 지부장은 “우리 사회 전반에 아주 짙게 깔린 노조에 대한 혐오 시선을 조금이나마 바꿔보고 싶었다”면서 “또 한 가지는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철폐 투쟁 과정에서 선배들은 그야말로 시민, 사회, 노동 진영의 전폭적인 연대를 통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는 여기에 대한 보답을 얼마나, 어떻게 했나를 돌아볼 때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올해 31년 차 한국지엠 노동자인 김창곤 전 민주노총 인천본부 본부장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개선이 노조의 기본 임무지만, 결국 노조는 공장 안뿐 아니라 지역에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길 꿈꾼다”면서 “현재 한국지엠지부가 지역에서 노조의 순기능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김창곤 전 본부장은 한국지엠지부 사회 연대 사업이 안규백 지부장의 2년 임기 안에 끝맺을 수 없는 성격인 만큼, 연대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제도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창곤 전 본부장은 “안규백 집행부가 현장 조합원들에게 연대 사업의 필요성을 많이 인식시킨 만큼 앞으론 한국지엠지부 내 상설위원회인 가칭 ‘사회연대위원회’를 꾸려서 집행부가 바뀌어도 연대 사업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방향을 검토하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안규백 지부장은 “노조가 주도하고 있는 이 모든 사업은 지속 가능한 한국지엠을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이런 사업이 일정한 성과를 내고 지속할 추진력을 얻는다면 회사, 지방정부, 시민사회, 학계까지 소중한 가치를 향유할 수 있을 거로 믿는다”며 “남은 임기 한국지엠지부라는 울타리 안과 밖을 넘나들며 노조 활동의 폭을 넓혀갈 계획이다. 한국지엠지부뿐 아니라 한국지엠, 부평구, 인천시에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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