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규범 활용뿐 아니라 국내 노동 보호 법·제도 개선 주요 과제로 제기돼
외투(외국인 투자)기업과 사모펀드의 ‘먹튀’, 내리막길만 예고된 국내 ‘일자리 파괴’가 반복되고 있다. “제도화된 대책의 부재 속에 노동자·시민의 생존권이 강제적으로 기업의 재산권과 맞교환”되는 현실이 방치되고 있단 뜻이다. 우리나라의 “덮어 놓고 규제 혁파와 지원 확대” 외국인 투자 정책은 글로벌 산업 선진국들의 흐름에도 역행한다. 산업 정책의 큰 그림과 지역 균형 발전 고려, 투자 유치와 병행하는 체계적인 규제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대개혁 요구가 분출하는 지금, 기업에 보장되는 영업 활동의 자유만큼이나 사회·경제적 공포로부터 노동자·시민의 자유 보장이 중요하단 원칙을 토대로 관련 법·제도 개선의 우선순위를 끌어올려야 한단 목소리가 국회 증언 대회에서 나왔다.
‘외투기업·투기 자본 행태 고발과 제도 개선 촉구 현장 증언 대회’는 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열렸다. 이번 증언 대회는 민주노총, 신장식 조국혁신당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용우·허성무 국회의원, 정혜경 진보당 국회의원이 주최했다.
방치된 외투기업 문제···
국제 흐름과 역행하는 정책
최근 해외 주요 산업 선진국들의 외국인 투자 정책은 세 가지 방향을 견지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방향은 △산업 정책의 상위 목표와 정합성을 추구하는 전략적 접근 △지역 균형 발전 목적을 고려한 정책 설계 △투자 유치 노력과 규제 노력 병행이라고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설명했다. 나원준 교수는 “최근 미국 등 주요 선진 산업국들은 산업 정책 차원에서 외국인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면서 규제에도 적극적이다. 이는 공급망 재편·안정화, 가치 사슬의 고도화, 자국 산업의 보호와 경쟁력 제고가 목적”이라며 “미국이나 일본, 영국 등은 외국인 투자를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유치하는 특성도 보인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정책은 이런 흐름과 반대다. 나원준 교수는 “(우리나라는) 거시적인 수준에서 경제적 합리성을 따지지 않고 외자 유치에 목매던 과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산업 정책이나 지역 균형 발전의 전체적인 밑그림이 부재한 가운데 외국인 투자 유치에만 몰두하다 보니 체계적인 규제 노력은 소홀하다. 지원이나 규제의 목표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덮어놓고 규제 혁파와 지원 확대부터 주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지역 고용 창출이 외국인 투자 유치의 목표라고 천명하면서도 막상 먹튀에 따른 집단 실직 등 문제는 방치한다”고 지적했다.
외투기업의 노사관계에 대한 규제도 빈틈이 많다. 외투기업의 철수 압박을 노동자들이 당해내기 어려운 노사 관계의 불균형, 단체교섭이 통하지 않는 글로벌 하청 기업 성격, 외투기업 대표의 손쉬운 해외 도피로 인한 부당노동행위 규제 무력화 등 여러 구조적 문제 속에 노조의 투쟁은 무력화·장기화되기 일쑤다. 나원준 교수는 “다국적 기업 본사의 자본 철수 결정으로 우리나라 사업장 노동자들이 전원 해고되는 경우에도 시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의 제도화된 고용 대책은 없다”면서 “외투기업의 먹튀와 그에 수반된 고용 불안은 제도화된 대책의 부재 속에 반복적으로 강제되는 재산권과 생존권의 맞교환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국제 가이드라인 준수 다국적 기업 특성 고려
국내 노동 관련 법·제도 강화 중요
이런 외투기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제 규범 활용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국내 법·제도 개선이 중요하다. 나원준 교수는 “중요한 건 국내 노동 보호 관련 법·제도의 강화다.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의 사용자는 투자 유치국의 사용자가 준수하는 고용, 노사관계 기준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에 해당하는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면서 “국내 법·제도의 수준이 올라가면 다국적 기업이 할 말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나원준 교수는 외투기업엔 배제된 노동·환경 관련 규제법 조항을 전반적으로 국제 규범에 부합하게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외투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경제자유구역법 제17조 제1항은 장애인과 고령자 고용 의무 회피 조항을 두고 있다. 제17조 제4항은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무급휴일 부여를 허용한다. 제17조 제5항은 파견 대상 업무를 확대하고 파견 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한다. 나원준 교수는 “이런 조항은 헌법상 평등 원칙을 위배해 입법 당시부터 논란이 제기됐으며 특히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점, 노동 보호의 최저선을 정하는 근로기준법을 우회해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점에서 개정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외국인투자촉진법에선 외국인 투자 규제를 체계화해야 한다. 나원준 교수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지원 정책은 그 경제적 효과를 사전 예측하고 사후 평가해서 결과에 부합하게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현재는 조세 감면이든 현금 지원이든 실질적으론 공짜로 외투기업에 주는 방식인데 궁극적으론 지원한 만큼 재투자와 고용 유지로 환원을 받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 또 외투기업 규제 강화의 초점을 경제 안보에만 맞출 것이 아니고 고용 영향, 지역 사회 영향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법에서 △외국인투자위원회 구성에 노동자 대표 포함 △현금 지원에 대한 환수 절차 규정 명확화 △폐업 사전 신고제 도입과 사회적 책임 명문화 등 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 관련해선 민주노총 법률원을 중심으로 제시된 바 있다. 근로기준법 제24조 제1항은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해 노동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밝혀,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제한한다. 제안된 개정 내용은 긴박한 경영상 필요를 판단하기 위한 요건으로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어야 함을 명확히 해야 한단 것이다. 또 근로기준법 제24조 제3항은 정리해고 과정에서 과반수 노조 내지 노동자 과반수의 대표에 ‘해고 50일 전까지 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고 정하는데, 제24조 6항을 신설해 과반수 노조 내지 노동자 과반수 대표에 ‘해고 실시 여부와 보상 합의에 대한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방법이 있다.
상법 개정 사항은 이사의 ‘주의 의무’ 내용을 신설해 이사가 직무 수행에 있어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한단 점을 추가하는 방향이 제안됐다. 또 청산 절차에 대한 노조의 합의권을 제도화하기 위해 상법 제571조의 해산 사유에 단서 조항을 넣어 노조와 단체협약에 회사 해산 사유를 제한하는 규정이 있다면 해당 규정에 따른 절차를 이행하도록 개정하는 방법이 있다. 상법 제571조의 해산 사유에 고용 영향이 큰 회사의 해산에 대한 별도 조항을 신설해 프랑스의 ‘플로랑주법’처럼 사업장 폐쇄를 희망하는 사업주에 먼저 인수자를 찾아야 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사업주로 하여금 인수기업을 포함한 모든 관련 정보를 사업장 노동자 대표 기구에 공개하도록 할 수 있다.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 관련 분쟁 해결을 위한 국내 연락사무소(NCP)의 개혁(노조 참여 보장 등), 외투기업의 실정법 위반에 대한 사용자 대표의 제대로 된 처벌, 노조의 국제 연대 확대를 통한 초국적 공동 대응 등의 대책도 제시됐다.
“사회·경제적 공포로부터 시민의 자유 지키는 방향으로”
현장 증언이 이어졌다. 안규백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지부장은 “(2018년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이후 경영 정상화를 명목으로 당시 약 8,100억 원의 신규 자금을 산업은행이 한국지엠에 투자한 이후) 한국지엠의 투자는 절반으로 줄고 로열티 비용은 매출액 대비 최대치로 증가했다. 수출·매출은 2배로 증가한 반면 내수는 말라비틀어지고 있다. 부동산은 다 팔아먹고 이윤은 5~7배 늘었는데 미래 전망은 불투명하다”면서 “한국지엠이 산업은행 등과 맺은 각종 합의서 공개, 산업은행 역할 강화, 강화된 외투기업 관리법 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노조는 고용 안정과 지역 사회 살리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한국지엠 공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선) 외투 자본인 지엠(GM)뿐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은행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지회장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모회사인) 니토덴코는 특혜의 수혜자면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먹튀 행각을 벌였다. 고용을 승계할 또 다른 생산 거점이 국내에 있는데도 고용 승계를 거부하고 있다”면서 “그 과정에서 해고된 우리에게 손배가압류와 부동산 강제 경매, 통장 압류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우리 같은 노동자를 만들어선 안 된다. 박정혜·소현숙 동지가 오늘(7일)로 456일째 고공 농성 중이다. ‘세상에 우리 편이 없다’며 고공에 오른 처절한 절박함을 희망으로 바꿔야 한다. 지난 40년간 외투 자본에 대한 먹튀에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은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동근 사무금융노조 사무처장(외국계노조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사무금융노조에 조직된 외투기업 사업장에서 △과도한 이윤 유출(고배당) △조세 회피 △노조 탄압·부당노동행위 등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사모펀드 사업장에선 △고용 불안·기업 해체 위험 △단기적 차익 실현 중심 경영 △대주주의 책임 경영 회피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동근 사무처장은 “(사모펀드의) 단기 차익 실현을 위한 구조조정을 제한하고 장기적인 성과지표(KPI)를 설정해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유도해야 한다”면서 “차입을 통한 배당, 과도한 자금 회수를 방지하기 위한 규제 강화와 외투기업·사모펀드의 조세 회피 방지를 위해 국제 조세 협력을 강화하고 조세피난처를 활용한 세금 회피를 막기 위한 법률 개정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원준 교수는 “외투기업 여부와 상관없이 사용자의 폐업 결정은 어디까지나 영업 활동의 자유에 해당하며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반면 시민의 사회·경제적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여전히 헌법상 기본권이 아닌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며 “외국인투자촉진법을 비롯한 관련 법 개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과 방향은 시민의 사회·경제적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헌법적 기본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