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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국노동자 대회를 위해 관악산을 넘다

좌파노동자회 | 2014-10-16 16:16:38

조회수 : 3,609

노동자대회.jpg
[사진출처 : 금속노동자(유경순)]

전국노동자 대회를 위해 관악산을 넘다(허영구 좌파노동자회 대표)
다음 달이면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다. 최근 전국노동자대회는 여의도 아니면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다. 누구도 전국노동자대회가 불법집회라거나 그래서 집회자체가 불허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그러나 1987년 노동자 대 투쟁 직후 몇 년간, 전국노동자대회는 당연히 불법이었다. 87년 7·8·9 노동자 대투쟁 이후 건설된 민주노조의 상급단체는 당시 법으로 모조리 불법단체였다. 따라서 불법단체가 개최하는 노동자대회가 불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는 법외노조였을 뿐 불법이 아니었는데 정권과 자본은 불법으로 몰아갔고 조중동 같은 자본신문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1987년 3000여건의 노동쟁의가 발생했고 지역과 현장에서 수많은 민주노조 깃발이 올랐다. 봉홧불처럼 노동자 투쟁이 피어올랐다. 1988년 민주노조 최초의 전국노동자대회가 연세대에서 열렸다. 참가노동자들이 혈서로 쓴 ‘노동해방’플랭카드를 들고 여의도까지 행진했다. 1989년 노태우 정권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민주노조운동의 폭발적 성장을 겨냥한 것이었다. 자본가국가권력의 입장에서 자본의 착취와 수탈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불법으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야만적 착취와 수탈이 범죄행위이기에 적반하장이라 할 수 있다. 1987~88년 치열했던 노동자투쟁과 전국적인 노조건설의 열기는 1989년 전국노동자대회로 모아졌다. 1989년 한 해는 전국적으로 건설된 민주노조를 하나로 묶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지역업종전국회의’를 통해 민주노조 총단결을 모색한 시기였다. 1990년에 업종회의로 뭉친 사무전문직 업종 연맹과 역시 같은 해 전국노조협의회(전노협)로 뭉친 지역조직들이 함께 전국을 돌면서 민주노조총단결을 위한 토론을 전개했다. 필자도 전국을 순회하는 토론회에 함께 했다. 그것은 매우 의미 있었고 보람찬 나날이었다. 그런 노력의 결실이 전국노동자대회로 나타났다.
정권은 전국노동자대회를 불법으로 몰았고 대회를 무산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섰다. 그러나 전국에서 모이는 노동자들은 어떠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대회에 참여할 기세였다. 서울대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는 단결과 투쟁이 집결한 공간이었고 노동자들의 감격이 타오른 무대였다. 거기 모인 노동자들 누구도 학교정문을 통해 입장하지 못했다. 경찰들이 정문을 물론이고 주변 골목골목을 모두 막아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이 과천과 안양에서 관악산을 넘었다. 야간산행이라도 하듯이 노동자대회 장소로 향했다. 정문 근처에는 노동자대회를 원천봉쇄하는 경찰의 감시망을 뚫고 넓은 울타리 곳곳을 뚫어야 했다. 노동자대회 전야제는 예상보다 늦어졌다. 밤이 짙어갈 즈음 전국노동자대회 깃발이 휘날렸고 당시 서울지역노조협의회(서노협)의장이었고 이후 전노협과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단병호 동지 등 많은 노조간부들이 투쟁을 결의했다.참가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비롯해 노동가요를 함께 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알바노조, <월간만원>, 2014.10월호 게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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