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20-05-24 08: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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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년 귀국 전 해에 캠브리지대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는 박노수 교수 | |
| ⓒ 진실위 자료사진 | |
1969년 5월 1일 새벽 친구인 서아무개가 갈현동 집으로 찾아와서 나갔더니 모르는 남자 셋이 조사할 게 있다며 검은색 차에 타라고 했다. 중정에 끌려가서 일주일에서 열흘쯤 조사받고 서대문구치소로 갔는데 가족은커녕 변호사도 한 달이나 지나서 만나게 해주었다. 중정에서 수사관들이 아무 설명 없이 매질부터 시작했다. 몽둥이로 때리는 건 기본이고 동베를린 두 번 갔다 온 증거가 필요하다며 여권이 어디 있느냐고 해서 모르겠다고 하니까 물고문을 했다. 침대봉을 무릎사이로 끼워 마치 통닭처럼 매달아서 주전자에 찬물을 담아 입 아래쪽에 부으면 그냥 입이 벌어져서 입 속으로 물이 들어가는데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전기고문도 받았다. 야전 전화기, 그러니까 돌리는 전화기의 전선을 양 손에 감고 전화기를 돌려서 전기를 통하게 하는 고문이었다.
연행되어 조사실로 가려고 복도를 걸어가는데 수사관들이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잡혔는데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느냐며 마구 때렸다. 조사실에서는 모아무개가 내 구두를 벗겨 그 구두로 분풀이 하듯이 때렸다. 다른 수사관이 들어 와서는 물에 젖은 수건을 손과 발에 묶고 전깃줄에 엮어서 전기고문을 했다. 전기고문하면서 모아무개가 '평양 갔다 왔냐?'고 딱 한 질문만 했다. 계속 고문을 하는데 살점이 모두 떨어지는 고통이었다. 여러 번 까무러쳤다. 옷을 벗기고 손과 발을 묶어서 다리 사이에 막대기를 끼워 대롱대롱 매달리게 하고는 물을 붓는 고문을 당했다. 그 고문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옷 입은 사람들 앞에 옷을 다 벗고 있는 것이 수치스럽고 모멸스러워 내가 짐승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발로 차는데 그때 맞은 후유증으로 지금도 왼쪽 허리 쪽이 시큰거린다. 그렇게 맞고 보니 나중에는 그냥 중정 수사관이 원하는 대로 진술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중정 수사관들이 나를 고문하면서 '김규남도 내가 (고문을) 했다', '김규남의 형도 지금 고문당한다'라는 이야기를 해서 내가 당한 거 생각해보면 김규남은 정말 심하게 당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모아무개한테 구두로 많이 맞아서 까맣게 피멍이 들어 구치소에 갔을 때 그곳 직원이 내 몸에 피멍든 거 보고 놀랐다. 중정에서 있는 동안 잠을 못 자게 해서 나중에는 비몽사몽한 상태가 되었는데 그 상태에서 고문당하면 그 고통 때문에 정신이 다시 들고 하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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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른바 ‘유럽간첩단’사건으로 재판 받는 피고인들. 오른쪽에서 맨 끝이 박노수. 그 옆이 김규남이다. | |
| ⓒ 진실위 자료사진 | |
중정에서 뺨을 두 대 세게 맞아서 순간 멍해져서 조사 후 목포의 집에 내려와서 병원에 한 달 정도 다녔는데 지금도 귀가 언짢다. 그리고 태어나서 그런 욕지거리는 처음 들어봤다. 수사관들이 나무봉을 책상에 딱딱 두드리면서 거짓말하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했다. 그래서 중정 수사관들이 지장 찍으라면 그냥 찍었다. 동생인 박노수를 면회한 장 신부님이 변호사와 아버지에게 박노수가 성기고문까지 당할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외삼촌(김규남 국회의원)이 흰색 사각팬티만 입은 채로 중정수사관 3명에게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수사관들이 서류를 보여주면서 윽박지르는 거 같더니 주먹으로 삼촌 가슴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야구방망이 정도 크기의 몽둥이로 삼촌 허벅지와 엉덩이를 때리거나 밀고, 발로 찼다. 그리고 양동이에 채워진 물을 바가지로 떠서 삼촌 얼굴과 몸에 계속 부었다. 너무나 가혹한 고문을 해서 나는 얼어붙어서 움직이기도 힘들고…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는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막사로 돌아와 밤새 울기만 했다. 그 다음날 저녁에도 몰래 가서 보았는데 전날과 마찬가지로 삼촌이 팬티만 입은 채 중정수사관 3명에게서 몸통과 하체를 중심으로 무차별 구타와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대략 5분 정도 보았는데도 너무 무섭고 가슴이 아파 막사로 돌아와 울기만 했다. 중정직원으로부터 외삼촌이 무슨 심부름을 시켰냐고 조사를 받아 '모른다, 나한테 심부름시키신 적도 없다'고 말했더니, 거짓말을 한다며 중정직원으로부터 맞고, 발로 차이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받았다. 그렇게 한참 맞고 다시 의자에 앉았는데 정신이 멍하고 온 몸이 부었다. 수사관들이 무언가를 쓰고 지장 찍으라고 해서 읽어보지도 못하고 찍었다.
조사실에 들어가니 바로 반말이었다. 그리고 수사관들이 내 진술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화가 나면 각목으로 엉덩이를 때리고 손이 바로 올라왔다. 원산폭격은 기본이고 벌도 세우고 난리도 아니었다. 많이 맞았고 밤을 새워 조사를 받아 제대로 잠을 못 잤다. 그리고 때리는 수사관이랑 조사하는 수사관이랑 달라서 부드럽게 대했다가, 때렸다가, 무섭게 했다가, 하는 식으로 정신이 없었다. 다른 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와 압박을 많이 받았다. 조사 받는 동안 다른 참고인들을 목격했는데 임아무개 운전기사는 나랑 대질을 했는데 많이 맞아서 멍도 있고 상처도 있었는데 얼었는지 말도 제대로 못해서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더니 중정수사관들이 '네가 수사관이냐'하면서 또 때렸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김규남 의원을 한 번 보았는데 속옷차림에 머리도 다 헝클어지고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아 보였다. 또 나중에 검찰조사 시에는 중정요원이 꼭 따라와서 앉아 있었다. 당시 공안 검사인 최아무개 검사가 담당이었는데 최아무개 검사도 중요한 문제니까 잘 이야기하라고 했는데 검찰 측에 유리하게 이야기하라는 소리였다.
중정에서 많이 맞았다. 그리고 다른 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니까 정신적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다. 공갈협박 욕설도 심했다. 특히 '너 하나 죽어도 신경 안 쓴다'며 협박을 하는데 정말 중정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조사받고 나와서 김아무개 비서나 임아무개 운전기사도 나같이 중정에서 오랫동안 조사받으면서 맞고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중정에서 조사받는 동안 화장실 가다가 우연히 김규남 의원을 한 번 보았는데 멍 자국에 아주 수척해 보였다. 검찰조사 받을 때 거기에 중정 요원이 꼭 따라와서 계속 있었다.
- 이아무개의 증언
중정에서 수사관들이 구타를 하는데 무엇으로 맞았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맞았다. 손, 발, 야구 방망이, 뭐 다 맞아 본 것 같다. '북한에 가서 무슨 지령을 받았나?' 이런 걸 물어보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어 답을 못했더니 맞았다. 전기고문을 당했는데 수사관들이 손가락 사이에 전선 같은 걸 끼고 전화기 같은 걸 돌려서 고문을 했다. 가혹행위로 인해 기절을 했는데 깨어보니 병원이었다. 깨어나니까 옆에 있던 수사관이 다시 중정 조사실로 데려가 조사를 했다.
- 운전기사 임아무개의 증언
이 사건은 1960년대 유럽유학생들의 동베를린 및 북한 방문사실을 이유로 간첩죄 등을 적용해 사형 및 유죄판결을 받게 한 사건이다. 당시의 남북 상황을 고려할 때 피고인들의 입동 및 입북 사실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중정은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고 진실규명대상자들을 비롯한 피의자들을 영장 없이 불법연행한 후 일주일 정도 불법 구금한 상태에서 고문 및 가혹행위를 통해 피의자들의 자백을 받아내어 기소했고, 검찰 수사과정에서도 중정 수사관이 배석하는 등 심리적 강압을 가해 재판을 통해 사형 등에 이르게 한 것은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인권침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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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수 | |
| ⓒ 진실위 자료사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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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규남 | |
| ⓒ 진실위 자료사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