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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9월 이전 Q&A

아슬프다

1004 | 2005-06-07 03:05:58

조회수 : 2,242

김오랑소령 동상을 육사에 세우고,
김창룡묘는 국립묘지 밖으로 이장하여야 한다.
이 두가지를 국방부가 해낸다면...
이후 국군은 국민 모두의 사랑을 골고루 받을 것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국민의 신뢰를 얻어낼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서해교전 전사자를 기리는 기념식을 정부와 정치권차원에서도 치루어낼수 있다면....

향후 국방부가 국가안보를 위해 준비하는 전력증강사업을 비롯한 많은 계획들이 국민 모두의 신뢰를 받으며 강력히 진행될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오랑소령 동상 육사에 건립....
친일파 김창룡의 묘 국립묘지 밖으로 이장...
서해교전 전사자 추모 기념식 정부 차원 그리고 정치권 차원에서 치루는 것...
이 세가지를 국방부는 중점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상징성은 중요한 것이다.
국군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여야 하는가의 물음에 대한 답이 될수 있을 것이며, 진정한 군인의 길에 대한 지향점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신뢰는 상징성을 통하여 얻어낼수도 있는 것이다. 보완적인 관계이지....허나 매우 중요하다.
국방부와 정치권의 적극적 고려를 촉구해본다.
「비문 없는 묘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제1장군묘역 168호 육군 소장 정병주의 묘.
12.12 당시 신군부에 맞서다 직속 부하들에 의해 총상을 입고 강제 전역당했던 정병주 전특전사령관이 묻혀있는곳이다. 정씨는 89년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후 이곳에 안치됐다. 그러나 정씨의 묘비는 7년째 백지 상태로 남아 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장군들의 묘비엔 동료 군인들이 헌사한 「추모의 글」이 빽빽이 새겨져 있다.
정씨의 묘가 무비문으로 남아 있는 것은 『명령을 생명으로 여기는 군 인들이 상관에게 총질을 하고도 버젓이 활보하는 세상에 고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는 유족들의 뜻에 따른 것. 그러나 5.18특별법 제정 발표 로 12.12와 5.18의 진실이 밝혀질 날이 다가오자 유족들은 가슴을 설레 며 비문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장남 승환씨(40·한성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다린 보람이 있어 아버 님의 비문을 만들 수 있게 됐다』며 『역사의 진실이 밝혀진다면 아버님도 지하에서나마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망인 강남희 여사(64)는 연이은 충격을 받고 고혈압 증세를 보이는등 건강이 좋지 않 은 상태. 강여사는 5.18특별법제정소식에 오래 간만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남 편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게 됐다』며 『참군인이었던 남편의 행적을 담은 좋은 비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씨는 강제 전역당한후 당시의 악몽을 되새기며 우울증세를 보이다 89년3월 실종 1백30여일만에 경기도 고양군 산중턱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승환씨는 『수사결과 아버지가 자살한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석연치않은 점이 많다』며 『아버지 죽음에 대한 진실도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
그는 12.12 군사반란 당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함께 진압군측에 서서 반란군에 대항하였던 대표적인 지휘관으로서 그는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달리 12.12 당시 이미 특전사를 지휘한지 5년이 넘은 시기여서 누구보다도 부대지휘에 자신이 있었고 전두환 소장의 격리작전에 의해 전두환 소장의 연희동 자택으로 유인되었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납치소식을 접하고 원대복귀하여서도 전두환측에 의한 반란의 진압에 자신이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아끼고 보호하던 직속부하인 제1공수여단장 박희도 준장과 제3공수여단장인 최세창 준장 그리고 제5공수여단장인 장기오 준장 등 수도권에 있는 자신의 지휘하 4개 공수여단중 9공수여단장 윤흥기 준장을 제외하고 모두 전두환 소장측의 반란군에 가담하여 배신을 함으로서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으며 방금전에 지휘하며 부대장악을 지시하였던 직속부하인 최세창 준장의 3공수여단 제15대대 병력에 의해 총상까지 당하며 체포되고 말았던 것이다.
더욱이 제1공수여단장 박희도 준장(육사12기,하나회)은 그 여단장 선발과정에서도 정사령관의 도움을 받았으며 1978년 11월 충남 광천지역으로 침투한 3인조 무장공비 소탕작전의 실패(제1공수여단 지역으로 월북 도주)로 박 준장이 예편 직전에 놓였을 때도 정사령관이 그를 구출해 주기도 하는 등 그의 군인으로서의 은인이기도 하였으며 제5공수여단장 장기오 준장(육사12기,하나회)도 자신의 동기생 중 마지막으로 장군진급을 하는데 정사령관이 앞서서 도와 주었으며 정사령관에게 충성맹세까지 한 장성이었고 제3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육사 13기)도 그가 특전사령부에 전입할 때 중령이어서 그후 줄곧 정사령관 밑에서 작전참모로 보직하였으며 대령 진급 및 준장진급 때에 정사령관의 도움을 크게 받았던 그의 심복부하라고도 할 수 있던 자들이었으니 특전사령관으로 5년동안 근속하면서 예하 지휘관과 참모들을 너무도 믿고 사랑한 결과가 배신으로 보답되었으니 그 분함이 얼마나 크고 원한에 사무쳤으리라.
하여튼 자신들의 은인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에게 총기를 사용까지 하여 살상케한 이들의 행태는 법적으로는 물론이고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결국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함께 12.12군사반란의 부당함을 증언하기 위하여 굿굿이 살아오다가 89년초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니 그의 사무친 원한을 푼 역사적인 12.12군사반란의 심판을 끝내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정병주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육군소령
12.12군사반란 당시 군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가 반란군의 흉탄에 산하한 한 젊은 장교가 있으니 그가 바로 김오랑 소령인 것이다.
비록 진압군측의 주요 지휘관은 아니었지만 그 중 한명인 직속상관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끝까지 반란군으로부터 보호하다가 그들에 의해서 살해되고 말았던 것이다.
더욱이 그의 둘도 없이 절친한 친구인 제3공수여단 예하 15대대장인 박종규 중령의 병력에 의하여 살해되니 친구에 의해 죽임을 당한 셈이다.
사전에 반란군측의 특전사령부 기습공격 정보를 입수하고서도 자신의 위치를 사수하다 비명에 간 그이기에 비록 계급은 낮았으나 세인들은 높이 칭송하고 있다.
후에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그의 죽음 소식을 접하면서 모두들 배신을 하는 와중에서 유독 그를 목숨을 바침으로서 보좌하려 했던 부하의 잃음을 슬퍼하였다고 하니 이 비극적 사건은 세인들의 맘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 같다.

김오랑 소령과 박종규 소령은 같은 군인아파트 위 아래층에 살았다고 한다.평소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이들은 단 하루밤만에 원수로 변했으니 정말 비극이 아니라고 할 수없다. 이후 김오랑 소령의 아들은 정병주 사령관의 아들이 키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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