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노조 대리교섭, 비정규지회 “믿어, 말어”
GM대우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공농성이 한달만에 끝났다. 원직복직과 고소고발 및 손배가압류 철회, 노동조합 인정을 요구하며 지난 3월22일 공장 안 철탑형 굴뚝에 올랐던 3명의 해고자들이 고공에서 단식농성까지 가는 결사적인 투쟁을 벌였지만, 결국 건강상태가 악화돼 4월22일 모두 지상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이 한달 동안 GM대우 사측은 용역경비들과 직·공장들을 동원하고, 컨테이너 박스와 가시철조망을 출입문과 울타리에 설치해 철저하게 고공농성장을 고립시켰다. 고공농성단에게는 최소한의 물과 음식물만 공급했고, 사용자성이 없음을 내세워 교섭은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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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서 스스로 내려오기만을 바라는 ‘시간끌기’였고, ‘고사작전’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원청 정규직노조인 대우차노조와만 대리교섭을 할 수 있다는 입장 외에는 어떤 것도 약속하거나 양보한 것이 없기 때문에 GM대우 사측의 고사작전은 그야말로 성공을 거둔 셈이다.
탈진해 지상으로 내려 온 고공농성단을 기다린 것은 체포영장이었다. 경찰은 GM대우 사측이 제기한 폭력 및 업무방해 등 고소사건과 관련, 21일 고공농성단 3명을 포함 창원비정규직지회 간부 5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놓고 있었다.
굴뚝에서 병원으로 직행한 2명의 농성단 중 자진출두한 오성범 조합원은 마산교도소에 구속수감 됐다. 대우차노조 창원지부로 향한 권순만 지회장은 단식을 계속하며 남은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의 불씨를 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회사 고사작전 승리…지상의 선물 ‘체포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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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이 일단락됨에 따라 관심은 교섭 진행, 즉 교섭을 통한 사태 마무리 여부에 쏠리고 있다. 당초 회사가 교섭의 전제로 요구했던 ‘농성 중단’이라는 조건이 충족돼 회사로서도 마냥 교섭을 피할 수 없고, 지역의 노동계 또한 고공농성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교섭에 매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상급단체와 창원비정규직지회는 요구안 조율을 끝냈고,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이미 결의된 총파업 강행 의사를 밝히며 GM대우 사측에 교섭을 압박하고 있다.
교섭권을 위임받고도 창원비정규직지회의 요구안에 대해서만큼은 줄곧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 왔던 대우차노조도 일단 이 조정된 요구안을 들고 교섭에 나서기로 했다.
이 요구안에는 ‘희망자 41명(단기계약직 6명 포함) 전원복직’을 핵심으로 △(주)대정 폐업 당시 근로조건 보장 △노동조합 인정 및 활동 보장 △노조 사무실 제공(원상회복) △고소·고발 취하 △손배가압류 철회 △검찰에 사측 탄원서 제출 △고공농성에 따른 고소·고발 철회 △출근 저지자 5명 출근 보장 등 9가지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포함돼 있다.
고공농성 돌입 시의 요구조건을 구체화한 이 요구안은 기본적으로 2월28일 특별노사협의회에서 제시된 회사측 최종안을 뛰어넘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교섭 진행이 순조로울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사측의 입장으로 봤을 때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기 때문이다. 또 대우차노조를 통한 대리교섭이기 때문에 교섭 과정에서 창원비정규직지회와의 입장 차이 등 노동계 내부의 불협화음이 터져 나올 가능성도 존재한다.
고공농성 정리 후 첫 교섭이 4월27일 오후 창원공장에서 열렸지만 대우차노조가 GM대우 사측에 요구안을 설명하는 수준에 그쳤다. 회사는 4월30일 예상대로 “2월28일 특별노사협의회에서 제시한 최종안의 연장선에서 교섭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권순만 지회장은 노동절 집회에 배포된 성명서를 통해 “GM자본이 얼마나 악랄하고 기만적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교섭권이 위임되었다고 교섭만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순천 현대하이스코, 청주 하이닉스처럼 강력한 투쟁을 할 수 있는 총파업을 결의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결국 다시 원점이다. 고공농성을 감행했던 딱 그 시점이다. 목숨을 걸었다고 표현된 한달 동안의 극한 투쟁에도 교섭은 진전이 없었고, ‘투쟁’이라는 말로 또 사측에 엄포를 놓아야 하는 상황으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확인된 것이 있다면 ‘비정규직노조 인정 불가’라는 GM대우 사측의 흔들림 없는 원칙과 창원비정규직지회의 취약한 조직력, 그리고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의 입장 차이와 이 가운데서 누구의 손도 들어줄 수 없었던 상급단체의 무기력함이었다.
▲ 창원비정규직지회는 지난해 9월30일부터 공장 안에 천막을 치고 원직복직 투쟁을 벌였다. 초기 40~50명의 해고자들이 함께 했으나 투쟁이 장기화 되면서 생계문제 때문에 대오는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사진=GM대우 창원비정규직지회>
때깔만 좋은 ‘교섭’…엄포만 놓는 ‘투쟁’
고공농성 돌입 전으로 돌아가 보자. 지난 2월28일 GM대우 사측과 대우차노조는 특별노사협의회를 통해 창원공장 하청업체 (주)대정 해고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의안을 이끌어낸다. 사측 최종안이라고 표현된 이 안은 △비정규직지회 핵심간부 및 조합원 8명 단계적 복직(합의시점 3개월 후 3명, 7개월 후 3명, 11개월 후 2명) △해고자 중 20명 복직(이상에서 복직 대상자는 원청인 GM대우가 신규 하청업체에 통보) △단기계약직 14명 복직 불가 △합의시점에서 비정규직 천막농성 정리 △대우차노조 위원장과 구두합의 등 5개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우차노조는 이 최종안이 다른 사업장 사례보다 나은 최선의 안이라며 창원비정규직지회에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창원비정규직지회는 단호히 거부했다. 최종안은 ‘선별·단계적’ 복직안으로 비정규직지회를 파괴하려는 사측의 의도가 담겨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핵심 간부들을 1년 가까운 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복직시키고, 단기계약직은 복직대상에서 제외하며, 더구나 복직대상자 선정을 GM대우가 하겠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조합원들을 분열시키고 비정규직노조 활동의 싹을 자르려는 의도가 명백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창원비정규직지회는 2005년 9월30일 (주)대정 폐업으로 86명이 해고된 후 6개월째 공장 안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합원들은 속속 농성장에서 이탈했고, 10여명의 조합원만 겨우 투쟁에 결합하고 있었다.
극심한 조직력 이완과 교섭안에 대한 실망, 최종안을 거부한 이후 노골화된 GM대우 사측의 농성천막 철거 위협은 창원비정규직지회에게 고공농성 감행 외에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3월22일 중식집회를 이용해 권순만 지회장과 단기계약직 해고자인 오성범 조합원이 기습적으로 굴뚝에 올랐고, 며칠 뒤 회사측이 농성장 철거를 시도하면서 진환 조합원이 고공농성에 합류했다.
▲ 고공농성 돌입 6일 만인 3월27일 지역차원의 첫 연대집회가 GM대우 창원공장 정문에서 열렸다. 참가 인원은 300명 남짓. 이 집회를 기점으로 전비연의 투쟁하지 않는 상급단체 비판도 표면적으로는 줄어들었다. ⓒ 매일노동뉴스
“궁지에 몰렸다. 굴뚝 끝까지 간다”
이후 노동계는 3명의 비정규직 해고자를 굴뚝 위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한동안 ‘투쟁이냐, 교섭이냐’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창원비정규직지회와 전비연 사내하청노조대표자회의, 외곽의 노동단체는 주말 독자적인 집회를 창원공장 앞에서 열며 격렬하게 GM대우 사측과 충돌했다. 고립된 고공농성단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장을 되찾아야 한다는 소위 ‘공장 진격투쟁’이었다.
이들에게 예정된 집회까지 취소하는 등 투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금속연맹 경남본부, 금속노조 경남지부 등 상급단체와 대우차노조 창원지부는 비판의 대상일 뿐이었다. ‘공장 진격투쟁’ 과정에 격렬한 상급단체 성토가 이어졌고, 금속노조 조끼가 내팽개쳐지기도 했다. 성명서가 발표되고 간담회가 열렸다.
이런 조정과정을 거쳐 상급단체들도 출근 선전전과 집중집회를 잡고 금속노조 총파업을 결의하는 등 투쟁을 통한 교섭 압박 수순으로 나갔고, 결국 상급단체와 창원비정규직지회는 교섭권을 대우차노조에 위임해 GM대우 사측과 교섭을 진행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이즈음 고공농성단은 이미 지쳐 있었다. 노동계 내부의 이견을 조율하는 동안 3명은 탈진했고, GM대우 사측과의 교섭 일정이 잡히기도 전에 119구조대 고가사다리차에 실려 굴뚝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 과정에서 교섭과 투쟁에 대한 창원비정규직지회와 상급단체의 입장 차이가 명확히 드러났다. 창원비정규직지회는 일찌감치 사측에 교섭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고, 특히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는 대우차노조를 통한 ‘대리교섭’의 실효성을 불신했다.
반면 상급단체가 투쟁에 소극적이었던 바탕에는 창원비정규직지회가 조직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무모한 투쟁을 감행했고, 자체 동력이 없는 상태에서 연대투쟁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또 지난해 비정규직투쟁과 관련 지부장을 불신임했던 정규직 조합원의 정서를 업은 대우차노조 창원지부의 ‘투쟁 단절’ 선언도 상급단체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사측에 꽉 잡힌 노동자, 돌파구는?
GM대우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300명, 정규직보다 숫자가 더 많다. 한때 이들 중 800명이 창원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었다. 그러나 이번 고공농성과 관련 이들이 마음속으로 성원을 보냈을지는 몰라도 누구도 공장 안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정규직 조합원들은 ‘투쟁 단절’을 선언한 대우차노조 창원지부장의 결정을 총회에서 66%의 찬성율로 지지하기까지 했다.
고공농성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곤 하지만 동요해야 할 현장은 이미 GM대우 사측의 수중에 떨어져 있었다. 회사는 고공농성 기간 정규직 조합원들이 창원공장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도록 통제했다. 한 정규직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용역깡패들 인건비와 구사대 특근비만 해도 비정규직들을 원직복직 시키고도 남지만 회사는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데만 치중했다. 말 안 듣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어떻게 되는지 똑똑하게 보여준 것이다. 다음 차례는 누구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