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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9월 이전 Q&A

끝까지 꼭 한번 읽어봅시다.끝까지....

이 영철 | 2006-09-12 11:52:20

조회수 : 2,095

(어느 싸이트에서 퍼온 글입니다)

묻지마 산별 노조. 투쟁하는 현장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우리가 세울 산별노조의 상은 무엇인가?
― 비정규직이 일 손 놓고 투쟁할 때 정규직도 함께 일 손 놓고 투쟁하는 것. 바로 이것이 현시기 산별노조의 계급적 성격이다.  

8월 중순, 라인이 멈춘 기아자동차 화성 공장 안에서 기아비정규직 지회 조합원 동지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50이 넘은 동지였다. 이 동지는 작년 기아비정규직 지회 파업 투쟁의 경험은 한 마디로 요약했다. “라인은 끊어야 맛이다” 그리고 올해 투쟁을 시작하면서 든 새로운 문제의식은 “10시면 10시, 바로 그 시간부터 라인이 끊어져야 하는데 라인이 돈다. 10시면 10시 그 시간부터 단 1초도 리인이 도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 파업 시간, 라인은 곧바로 끊어져야 한다”는 결의를 밝혔다.

그렇다. 파업 시간 단 1초도 라인이 도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라인은 끊어야 맛이다. 기아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동지는 비정규직 투쟁의 새로운 단계를 한 마디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즉, 기아비정규직지회 조합원 동지들은 비정규직 스스로의 단결에 의한 대중투쟁, 대중파업의 길을 활짝 열어 제킨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출발한 비정규직 대중파업의 자신감은 마침내 8월25일, 대공장 사내하청노동자들의 공동파업의 실현으로 나타났다. 물론 비정규직 대중파업은 물리적인 힘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고 자본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 여전히 객관적인 힘의 한계 속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결이 약하면 연대로써 힘을 성장시켰던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을 따라서 비정규직 대중파업, 공동파업을 지켜내고 확대하는 것이 산별노조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비정규직이 일 손 놓고 투쟁할 때 정규직도 함께 일 손 놓고 투쟁하는 것”이다. 기아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동지는 산별노조의 계급적 성격에 대하여 정말 군더더기 한마디 없이 정확하게 정식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식화는 자신의 투쟁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그리고 현대자동차 울산 전주 아산 공장에서 자본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연대한 소수의 정규직 활동가들의 작지만 너무나 소중한 계급적 전통의 경험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계급적 전통을 산별노조 전체로 확대하고 강화하는 길만이 우리가 세울 산별노조를 강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또한 정규직 노동조합이 설치해 논 데드라인에 갇히지 않고 비정규직 스스로의 단결과 독자적인 실천 투쟁만이 정규직 동지들의 “계급의 기억”을 직접 행동으로, 현장 연대와 결합시킬 수 있다는 투쟁의 경로까지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독자 파업의 경험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파업 투쟁 문화제에서 율동패 동지들의 율동을 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 율동패를 즉석에서 만들고, 나도 한 가락 하는데, 노래패도 만들면서, 선배 동지들의 피어린 투쟁, 파업 전야 영화도 보면서 나이 50넘은 하청노동자들이 새로운 전통,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만 했던 나이 50이 넘은 하청노동자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고 새로운 관계망들을 자신의 투쟁 경험을 통해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논하고 있는 산별노조의 모든 것을 집약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모습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민주노조를 건설할 때 대공장 정규직 동지들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계급적 활력이 솟구치던 노동자 민주주의는 기억에만 의존하는 과거의 빛바랜 경험이 아니라 대공장과 부품사, 정규직과 비정규직 동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서로 협력하고 공동투쟁, 공동파업을 통해서 만들어가야 할 활동하는 기구, 투쟁하는 기구로서의 산별노조의 모습이어야 한다.  

노동자는 하나다. 더 이상 거짓말 하지 말자.

지난 시기 대공장 사내하청투쟁은 박일수 열사 투쟁, 류기혁 열사 투쟁, GM대우차원비정규직지회 고공농성 투쟁, 현대자동차 원, 하청 연대회의를 통해서 “노동자는 둘” 이라는 뼈저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솔직해지자. 대공장과 부품사,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생활적, 운동적으로 나누어져 있다. “노동자는 둘”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금속노조가 형식적으로 이미 생활적으로 굳어진 “수직계열화 된 계급 분단”을 자동적으로 허물어 하나로 결합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무늬만 산별노조가 아닌, 대공장과 부품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현장 공동투쟁을 어떻게 연결하고 결합시킬 수 있는가가 고민의 초점에 놓여져야 하고 바로 여기서부터 규약의 문제, 교섭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출발해야 한다.  

묻지마 산별 ―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외면, 통제, 연대단절 선언

올 상반기 묻지마 산별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 동지들이, GM대우창원 비정규직 동지들이,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동지들이, 기륭전자 동지들이 자기희생을 통한 절박한 투쟁을 조직해왔다. 비정규직 스스로의 단결뿐만 아니라 이 단결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써의 “연대”는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따라서 투쟁하는 현장,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어떠한 입장과 태도를 취했는가, 실천적인 연대를 조직했는가, 이것이 현시기 민주노조운동의 성격을 규정하는 계급적 경계선이다. 한 예로 GM대우창원 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의 고공농성과 이와 관련하여 대우자동차 정규직 노동조합의 “연대단절 선언”은 묻지마 산별의 계급적 현주소이다.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이 쟁취를 위한 비정규직의 권리보호가 아닌 전국 비정규직 투쟁의 거점단위로 확대 되었을 경우 휴업과 폐업 등 극단적 조치까지 내려질 경우 조합원의 피해가 엄청나게 불어날 것이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정규직의 아픔을 이해하면서도 노동조합의 입장을 피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간부들의 동의를 얻어 연대를 단절할 수밖에 없다“(창원지부 김기한 지부장 성명서 내용 중)

“공장을 볼모로 한 싸움” “구호와 비현실적인 투쟁” “통제 불능의 싸움” 이것이 대우자동차 이성재 집행부에서 고공농성 투쟁을 규정한 태도이다. 사내하청투쟁은 계약해지와의 투쟁이다. 계약해지로 인한 해고된 조합원들의 전원 복직과 노동조합 인정, 현장 활동보장은 원칙적이고 지나친 요구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이고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계약해지를 막아내고 노동조합의 현장활동을 보장받음으로써만 사내하청 노조는 유지될 수 있고 나아가 스스로의 단결된 힘을 성장시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런데 이성재 집행부는 대리교섭을 통해 단기계약직을 배제한 그것도 선별적 단계적 구두 복직안을 받으라고 했다. 그리고 모든 투쟁을 정리하라고 했다. 이 안은 이성재 집행부로써는 “이성적이고 합리적 해결 방안”일 수 있지만 그 내용은 비정규직 내에서 “계급 분단”을 용인하라는 것이고 노동조합의 현장활동을 보장받지 못함으로써 “조직력의 와해”로 귀결되는 빈껍데기 안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연대단절 선언”은 자본가계급과의 “노골적인 협력”을 선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나아가 비정규직 내에서의 “계급 분단”을 허물고 계급적 연대의 전통을 사수하기 위한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분명한 반대 선언이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서 거치지 않는다. 대우자동차 이성재 집행부의 노골적인 계급 협력 선언은 기아자동차에서 현대자동차에서도 그 형식에서는 차이가 있어도 내용적으로는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류기혁 열사 논쟁”은 민주노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이었다. “공동결정하지 않으면 책임 질 수 없다”는 원,하청 연대회의에서의 선언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본가계급을 위한 것이었다. 묻지마 산별 전환 캠페인이 한창인 6월12일, 현대자동차 울산 승용3공장 대의원회는 HD 신차 맨아원 협상에서 106명의 비정규직 잉여인원에 대해서 재취업에 잠정합의했다. 이것은 비정규직 노동조합 3공장 현장위원회에서 규정했듯이 “재취업은 정리해고”에 싸인 했던 것이다. 정리해고에 맞서 함께 투쟁해도 모자랄 판에, 정규직 대의원들에 의해서 비정규직의 모가지가 합법적으로 잘려나가는 참담한 상황이 묻지마 산별 캠페인의 중심지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정리하자. 묻지마 산별 캠페인의 중심지에서 “연대단절 선언”이 공표되었다. 이것은 정규직 노동조합에 의해서 비정규직의 정리해고가 “합법화”되는 것이었고 비정규직 내부의 “계급분단”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절박한 이해와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통제불능의 싸움, 구호와 비현실적인 투쟁”으로 매도되고 계급적 연대는 실종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는 정규직 노조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지 않는 만큼 정규직 노동조합의 현장 조직력은 파괴되고 자본의 현장통제력은 배가된다. 이것이 다시 부메랑이 되어 정규직 노동조합의 현장조직력을 거침없이 파괴하고 있다. 원인이 결과가 되고 다시 결과가 원인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남문수 열사의 죽음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묻지마 산별의 결론,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파업하지 않는 산별노조

산별전환 총회 이후 한겨레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전재환 금속연맹 위원장은 “지금 보다 훨씬 더 안정된 노사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비정규직 개악안을 폐기시키는 투쟁, 노사관계로드맵을 분쇄하는 투쟁은 노사관계의 긴장을 넘어 노사관계를 파국을 향해 치달을 수밖에 없게 한다. 누가 공장의 주인인가를 놓고 결코 물러서거나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인 계급투쟁이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투쟁의 선두에 서야 할 금속연맹 위원장이 “노사관계 안정”을 논하는 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산별노조의 화두는 이제 계급적 연대 투쟁이 아니라 “노사관계 안정”이다. 이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대공장의 파업은 오히려 줄어들어야 한다”(금속산별로 뒤집기 한 판) 따라서 현대자동차의 경우 구지 라인을 끊을 필요가 없다. “굳이 현대차 라인을 끊지 않아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서열 되는 공장을 하루 이틀 세우면 현대차 생산 자체가 중단 된다”(현대자동차 노조 박유기 위원장, 매일노동뉴스 인터뷰]

비정규직 노동자들, 부품사 노동자들은 산별노조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정규직의 연대 없이 맨날 주터지다 이제 함께 투쟁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금속연맹 상층 지도부들은 현장 조합원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오히려 파업의 부담을 부품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 한다. 금속연맹 상층 지도부는 독일, 네델란드 산별노조의 사례가 “원전”과 같은 지침이다.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산별노조의 파업의 방책은 “망하지 않을 사업장, 자본의 이윤을 심각하게 파괴하지 않는 사업장, 즉 중점 파업 대상 사업장”을 선정하는 것이다. 한 예로 “독일 금속노조가 11년 무쟁의 만에 95년 파업투쟁을 벌였을 때, 파업을 해도 망하지 않을 기업 120개를 고르고, 그 중에서 40년 동안 한 번도 파업을 한 적이 없는 지역을 고르고, 그 중에서도 소비자와 중소 납품업체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 사업장 22개를 골라 파업”을 하는 것이다. 일명 “지명 경고 파업”은 금속연맹 상층 지도부에게는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다. 바로 이러한 파업의 밑그림을 가지고 산별전환 교육 때 “산별 가면 파업도 줄어들 것”이라고 조합원들에게 약속했던 것이다.

“지명 경고 파업”이 대공장 상층 지도부들에게는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지 않으면서도 산별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단위사업장으로 치고 들어오는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선 단위사업장 현장 투쟁, 파업 투쟁과는 대립될 수밖에 없다. 지명경고파업으로도 산별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은 대중파업을 자제하고 생산성 향상에 협조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내는 사소한 개량의 떡고물일 것이다. 그 과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우리가 이미 경험했듯이 단위사업장 파업 투쟁에 연대단절 선언, 고립, 투쟁 동력이 와해되는 과정에서 폭력적으로 마무리를 강요하는 참담한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파업하지 않는 산별노조의 최종적인 결론은 바로 산업별 사회적 합의기구, 노사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미 2004년부터 국가수준-업종지역수준-사업장 수준으로 연결되는 중층적 교섭 체계, 사회적 합의기구를 추진해왔다. 사회적 합의기구의 목적은 자본가계급의 임금가이드라인을 통한 임금억제 정책, 대중투쟁과 파업에 대한 자제, 생산성 향상에 협조, 노사협력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산업별·업종별협의회가 구성되면 산업의 발전과 노동자 권익 향상 등 폭넓은 논의가 가능하고 상대방 입장을 충분히 파악하는 가운데 중장기적인 노사관계의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책무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고, 이는 정책적 과제들이 정치파업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조성준 노사정위 위원장, 매일노동뉴스 인터뷰)

산별교섭의 조기 정착은 정치파업으로 가는 길을 차단시키는 자본의 바리케이트라는 것을 조성준은 아주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자본가계급도 산별교섭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산별교섭의 조기 정착의 조건으로서 “이중 교섭, 이중 파업”이 발생하지 않은 교섭구조, 금속 중앙 상층 지도부와의 “우선 협약”이 모든 단위사업장까지 효력을 미치고 통제할 수 있는 교섭구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 요구하는 대로 “이중 교섭, 이중파업”이 발생하지 않은 교섭구조가 바로 금속연맹이 제기하고 있는 조직구성 원칙, 즉 권한과 인력의 중앙 집중이다. 교섭권, 체결권, 쟁의권, 인사권, 재정이 모두 금속중앙으로 집중된다. 금속 중앙의 간부들은 이제 현장 조합원들의 통제권 밖에 놓이게 되고 현장 조합원들은 중앙을 통제할 수 있는 어떠한 권한도 박탈당하게 된다. 중앙 지침의 수동적인 동원 부대로 전락하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화하고 노동삼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모든 권한과 인력의 금속 중앙 집중은 정상적인 것도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투쟁을 조직하는 “전투체계”가 아니라 바로 산별 교섭을 위한 체계, 노사협력체계이기 때문이다. 2004년 보건의료노조의 10장 2조처럼 단위사업장의 파업 투쟁을 통제하고 심지어 “비공인 파업으로 규정하여 파업을 파괴하는 행위”는 금속 산별노조에서도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금속 중앙은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얼마든지 파업 투쟁을 자제시키고 심지어 직권조인으로 파업 투쟁을 파괴할 수 있다. 파업 파괴의 대가로 노조 지도부에게는 정치적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지만 현장 조합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부품사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기우가 아니라 지난 6년 동안의 비정규직 투쟁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의 굳어진 사실로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금속 중앙으로의 권한과 인력의 집중은 이러한 길들을 활짝 열어 놓게 될 것이다.    

금속노동자들의 공동 투쟁을 조직하는 수평적 연대기구의 건설은 단위사업장 현장으로부터의 “민주적 통제”가 가능한 조직구성이어야 한다.

산별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불안정한 노동자 등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조직화를 확대함으로써 기존 단위 기업의 정규 노동자를 조직 대상으로 했던 노동조합 체계보다 대중적 결속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형식”일 뿐이다. 내용이 채워져야 한다. 산별노조가 금속노동자 공동투쟁을 조직하는 기구, 수평적 연대기구가 되기 위해서는 단위사업장별로 치고 들어오는 자본의 유연화 공세에 맞선 전투체계로 조직구성을 새롭게 해야 한다. 그것은 금속 중앙으로의 “집중주의”가 아니라 단위사업장 현장으로부터의 “민주적 통제”가 가능한 조직체계 이어야 한다.

단위사업장의 독자파업권은 무조건적인 권리로서 규약에 의해 보장받아야 한다.

산별노조가 되더라도 자본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대, 임금삭감 공세, 노동강도 강화, 장시간 노동, 현장통제 강화 등 작업장 수준에서의 공격을 강화할 것이다. 작업장에서의 자본의 공격을 방어해내지 못하고 패배한다면 산별노조는 덩어리만 큰 식물노조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단위사업장에 독자파업권이 규약에 의한 권리로써 보장됨으로써만 “작업장 단위의 조합원들이 스스로의 운명을 독자파업을 통해 개척”할 수 있고 이 투쟁을 지역적 연대, 나아가 금속노동자 전국총파업 투쟁의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 대덕사 구조조정 분쇄를 위한 울산지부 총파업, 현대하이코와 하이닉스 매그나칩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 연대파업, 기륭전자, KM&I, 현대하이스코,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금속노조 전국 하루 총파업 등 금속노조는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화하고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만약 단위사업장에 독자파업권이 없다면 자본의 공격에 능동적으로,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단위 사업장 조합원들이 스스로의 독자적인 결정으로 파업에 돌입했을 때, 이것은 비공인 파업이 될 수밖에 없으며 금속 중앙이 이러저러한 의결단위를 거쳐 비공인 파업으로 규정한다면 사살상의 파업파괴 행위, 자본가계급에 협력하는 배신행위가 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박일수 열사 투쟁을 통해, 류기혁 열사 투쟁을 통해, 현대 기아 원,하청 연대회의를 통해 무수히 많은 경험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비공인 파업 규정, 파업파괴행위의 가능성을 충분히 예감하고 있다. 따라서 단위사업장의 독자파업권은 무조건적인 권리로서 규약에 의해 보장받아야 한다.

단위사업장에 교섭할 수 있는 권리, 조합원 총회를 통한 체결권을 규약으로 보장해야 한다.  

현재 금속노조의 교섭은 중앙 교섭-지부 집단교섭-지회 보충교섭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전국적인 공동의 현안 문제를 제외하면 사실상 단위사업장의 임금과 단체협약(단결과 투쟁의 제권리)에 대한 교섭은 지회 보충교섭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금속 중앙 간부들은 이러한 지회보충교섭의 인정을 산별노조다운 교섭이 아니고 지양되어야 할 과도기적 교섭체계로 말하고 있지만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맞서 오히려 강화되어야 할 권리인 것이다. 노동삼권이 없는 단위사업장, 총도 없고 총알도 없는 상황에서 자본과의 전투는 생각할 수 없다. 독자파업권도 없고, 교섭권도 없다면 개별 자본가들은 꼬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교섭체계는 교섭권이 위원장에게 있고 지부, 지회로 교섭권을 위임하는 형태다. 그러나 자본의 노동유연화, 단위사업장 구조조정분쇄, 생존권 사수 투쟁을 위해서는 거꾸로 교섭권이 위치해야 한다. 즉 단위사업장에 교섭권이 있고 투쟁의 지역적, 전국적 확대를 위해 지부, 금속 중앙에 교섭권이 위임되는 형태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위임된 교섭의 요구안은 지회 현장 조합원들에게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하고 교섭의 과정은 실시간으로 보고되고 검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만 단위사업장 현장조합원들이 교섭의 내용과 교섭의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한 투쟁에의 “자주적 참여와 전투적 행동”을 조직할 수 있다. 또한 자주적 참여와 전투적 행동을 통한 투쟁의 결과물에 대해서 단위사업장 조합원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인 것이다.

단위사업장에 소환권과 파면권을 규약으로 보장해야 한다.

금속조합원에 의해 직접 선출된 간부들은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자리이지 결코 특권의 자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미 자동차 노동조합의 붉은 조끼는 노조간부들만 착용할 수 있는 권력의 상징이다. 노동조합 간부들의 뇌물 수수는 모든 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상화된 부패와 타락의 징표이고 딱 그만큼 노동운동을 장악하고 있는 자본가계급의 영향력이다. 이러한 부패와 타락의 징표는 노동자계급의 운명을 자본가계급에 갖다 바치는 직권조인을 통해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노사관계 안정은 자본가계급과 그 정부를 위한 것이고 전체 조합원들의 이해를 배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과의 협력체제, 사회적 합의주의 정신이다.  

대공장에서, 산별이나 총연맹에서 자본가 및 그 정부와 비공개적인 거래와 협약들이 오가는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공공연한 비밀을 무대위로 올리는 것이 바로 산별교섭이고, 산별교섭의 대표성을 획득하기 위한 조직시스템이 바로 “모든 권한과 인력의 중앙 집중”이다. 현재 추진 중인 산별노조는 아래로부터의 통제가 몇 단계의 대의기구를 통해 걸러지고 차단되며 “위로부터 아래로의 통제”가 강화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정부와의 협약이 배신적인 경우에는 현장조합원들에게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대의를 배신하는 행위에 대해서 단위사업장 현장에서 소환할 수 있는 권리, 파면할 수 있는 권리를 규약으로 보장함으로써만 출혈을 최소화하고 조직력을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  

조직 체계, 교섭 구조 논의에 대한 입장

금속노조의 조직체계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이미 세가지 안(한시적 기업지부안, 광역본부안, 업종본부안)은 묻지마 산별 전환 캠페인 시기에 제출되었지만 현장에 보고되지 않았고, 산별전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상층 논쟁으로 비밀에 붙여졌다. 산별전환 이후 조직체계에 대한 논쟁은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맞춰 어떻게 대공장 부품사 노동자들의 연대를, 정규직과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위한 전투체계를 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교섭구조를 짤 것인가? 어떻게 자본가계급과의 교섭을 잘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단적으로 조직체계에 대한 논쟁은 교섭 구조에 대한 논쟁이다. 가장 노골적인 교섭지상주의인 업종본부안으로부터 한시적인 기업지부안까지 대공장 상층 간부들, 자기 정파의 지배권을 획득하기 위한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이 논쟁에는 단식투쟁 중인 기륭전자에 대한 연대방안은 없다. 이 논쟁에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해고자 복직, 독자 임단협 투쟁 승리, 노동삼권 쟁취 투쟁에 대한 연대방안은 없다. 이 논쟁에는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조직한 하이닉스 매그나칩 비정규직 동지들, KM&I 비정규직 동지들에 대한 연대방안은 없다. 지금 투쟁하고 있는 현장, 지금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에 대한 즉각적인 연대방안을 강구하지 않은 산별 조직체계 논쟁은 기만일 수밖에 없다. 산별조직 체계 논쟁은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논쟁이 아니라 오직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교섭구조 논쟁이라는 것을 스스로가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노사안정을 위한 파업하지 않는 산별노조, 교섭구조를 결정하기 위한 조직체계 논쟁, 업종본부안부터 한시적 기업지부안까지 그 모두에 반대한다. 이 모든 안들은 형식적이나마 단사 안에 갇혀던 대공장 조합주의가 “전국화”되고 대공장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태도에서 보여줬듯이 “연대단절 선언”이 전국적으로 반복 재생산되는 대공장 간부들, 자기정파의 지배권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고 결코 부품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종본부안이든, 한시적 기업지부안든 규약으로 공식화되는 순간 “노동자는 둘”이다란 것을 규약으로 공식화하는 것이고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를 인정하는 이중 단협”의 길을 여는 것이다. 지금까지 현대자동차든, 기아자동차든, 대우자동차든 그 어느 곳에서도 “원청사용자성 인정 쟁취” 투쟁을 위해 원,하청 공동파업을 조직한 곳이 없다. 공동파업을 조직하기는커녕,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독자적인 투쟁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는 협박으로 통제하려고 했던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우리는 더 이상 “계급 분단”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금속노동자 단일 공동 단협을 쟁취하기 위한 현시기의 수단은 원청사용자성 쟁취를 위한 금속노동자 전국총파업이다. 따라서 금속노조는 대공장과 부품사를 연결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연결하고 보장노동자와 해고노동자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집합적 힘”을 건설하는 투쟁하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 어떠한 이유에서건 “계급 분단”을 허용하고 고착화시키는 업종본부안과 한시적 기업 지부안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산별노조의 조직체계로 현 금속노조의 본조 - 지역지부 -지회 체계를 지지한다. 나아가 단위사업장의 독자파업권과 교섭권, 조합원 총회에 의한 체결권, 소환권과 파면권이 규약에 의해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정규직노동조합의 조직 편재 문제

광역본부안이든 업종본부안이든, 한시적 기업지부안이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교섭에 대한 문제로 꽉 차 있다. 다만 한시적 기업지부안은 지역 지부로 편재할지, 기업지부에 편재할 지를 비정규직 단위와의 논의를 거쳐 결정한다고 되어 있다. 이조차도 “계급 분단”을 분쇄하고 정규직, 비정규직의 “집합적 힘”을 조직할 계획은 아예 없다.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는 것이 산별노조이다. 비정규직이 밥숫가락 놓고 투쟁할 때 정규직도 밥숫가락 놓고 함께 투쟁하는 것이 산별노조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누구의 이해를 대변하는 산별노조를 만들자고 하는 것인가? 지금 이곳, 투쟁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방안이 통제되고 있는 것, 이것은 현시기 산별전환 논쟁의 조합주의적, 노사협조주의적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에서는 기업지부를 인정하고 기업 지부 품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기업지부 내로 들어오면 생존을 보장해주겠다고 회유한다. 비정규직 조합원들 정규직의 연대 없이 맨 몸뚱이로 맨날 당하다 보니 산별노조에 대한 기대심리가 크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정규직의 대리교섭을 넘어서 본 적이 없고 정규직의 대리교섭을 통해서만 조직력을 유지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력”이었다. 따라서 자본의 탄압 앞에서 기업 지부의 품안에 있는 것이 조직력을 보존하는 하나의 방법처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지부를 인정하고 기업지부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해체하게 될 것이다. 계급분단을 허물고 원,하청 노동자들의 “집합적 힘”을 건설하기 위한 자기 역할을 포기하고 대공장 조합주의에 굴종하는 또 하나의 조합주의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은 운동의 과거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대변해야 한다. 정규직 노동조합의 연대 없이 조합의 미래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계급적 연대의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공장 부품사, 정규직 비정규직의 계급 분단을 허용하고 고착화시키는 기업지부 편재를 단호히 반대하고 지역 지부로의 편재를 통해 부품사 노동자들과의 새로운 연대의 전통을 만들어가야 한다. 부품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파업, 비정규직 노조 스스로의 단결을 통한 공동파업을 통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를 이끌어올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이것이 비정규직 투쟁이 운동의 미래를 대변하는 길이고 계급 분단을 허물고 대공장 부품사,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합적 힘”을 주조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미 대공장 사내하청투쟁은 고립된 소수의 투쟁이 아니라 비정규직 대중투쟁의 시대, 비정규직 단위의 공동파업을 열어가고 있다. 이것은 비정규직 스스로의 단결과 독자적인 실천, 그리고 소수 정규직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연대를 통해서 획득한 성과물이다. 이제 부품사 동지들과의 연대를 통해 힘을 충원하고 대공장과 부품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수직계열화된 계급분단을 허물어 버리고 하나의 집합적 힘을 건설하는 투쟁조직가로서의 역할을 강화해나가자.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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