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신지호 의원, 당신은 우리들은 도심테러분자라고 불렀더군요.
그리고 저희들이 고의로 방화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구요?
그리고 검찰은 우리와 함께 있던 동료들을 모든 책임을 떠넘기면서 구속시켰더군요.
저 이상림은 이제 일흔 한 살먹은 노인입니다.
제에게 용산은 삶의 터전이자 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저는 용산에서 30년 넘게 갈비집을 했었죠. 그러다 작년에 3억을 들여 호프집으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턱도 없는 보상금을 던져놓고 여기서 나가라고 하더군요. 너무 억울해서 망루에 올라갔습니다.
제가 망루에 올라가겠다고 하니까 설흔 여섯먹은 막내아들이 제가 올라가겠다고 하더군요.
해서 옥신각신 싸우다가 결국 둘다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 막내아들도 건물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저는 큰 것을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조그만 공터에서 장사라도 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죠. 그래요. 정말 소박한 자영업자의 꿈이 짓밟히면서 신지호 , 당신이 말하는 도심테러분자가 되었군요.
저 이성수는 전철연 회원입니다. 나이는 오십이구요. 신지호 당신이 말하는 반국가단체 소속이지요.
한 때 저도 살 만큼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구공장을 운영하다가 화재로 모든 것을 잃고 리어카에서 호떡을 굽거나 뻥튀를 해서 먹고 살았죠.
그런데 지난해 4월 수지의 집이 재개발로 헐리면서 천막생활의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강제철거에 저항하기 위해서 두 아들은 수원외가에 보낸 뒤 부인과 함께 천막을 짓고 버티며 싸웠습니다.
용역직원들이 세차례나 천막을 부쉈지만 그때마다 천막을 다시 지었습니다.
저는 제가 당한 고통이 저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전철연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싸움에도 제 부인과 함께 참여 했습니다.
농성에 들어가기 전에 아내가 \" 가족이 있으니까 몸을 잘 챙겨야 한다 \" 고 신신당부하더군요. 제 아내와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 하늘나라로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저 양회성은 나이는 쉰 다섯이고 용산에서 세를 얻어서 장사를 해왔습니다.
저는 30년의 요리사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3년 전 빚을 내 용산에 100평 짜리 복집을 낸 게 불행의 화근이었죠. 하루 매출이 100만원에 이를 정도로 장사가 잘 됐지만, 철거가 시작되면서 용역직원들이 행패를 부려 월 20만원까지 매출이 떨어졌습니다. 보상금은 5천만원이었지만, 4년 전 보증금 8천만원에 수리비 7천만원, 시설비 5천만원 등 2억원이 넘게 들어간 상황이었다. 황당했습니다. 단지 살아온 터전을 지키겠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그래서 농성장에 올라갔습니다. 이 나라에 태어난 게 죄라면 죄일 뿐이죠. 지난 16일 제 뜻을 따라 일식 요리사가 된 두 아들을“소주나 한잔 하자”면서 집으로 불렀습니다. 저는 아들들에게 “요즘 아버지가 많이 힘들다. 이거 처리되면 우리 식구끼리 조그맣게 3부자 일식집을 하자”고 말했죠. 이게 마지막입니다.
저 윤용헌은 나이는 이제 마흔 여덟입니다.
저는 서울 중구 순화동에서 10년 동안 식당을 꾸려오다 2년 전 철거를 당해 온 식구가 근처 단칸방으로 나앉았습니다.
저는 이런 고통을 겪은 후 부터 본격적으로 철거민을 위한 운동에 나섰습니다. 제 아내는 철거 후 스트레스 때문에 아프고, 큰애는 올해 대학에 갑니다. 학비와 병원비가 걱정이군요.
저 한대성은 이제 쉰 둘입니다.
아직 제가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해주는 분이 아직 없군요.
신지호 의원, 저희들이 바로 당신이 말한 도심테러분자들입니다.
소박한 자영업자로서의 꿈이, 그리고 작은 삶의 보금자리가 무참히 짓밟힌 것에 목숨을 건 항의를 한 죄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MB와 당신들 한나라당 패거리들이 우리 불쌍한 서민들을 삶의 벼랑으로 내 몰면 내 몰수록 도심테러분자들은 수백, 수천으로 늘어나겠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남훈 경장. 설흔 둘입니다.
무리한 진압에 투입되어 젊은 생명을 빼았겼군요. 비록 현장에서 치고 받고 싸우긴 했지만 같은 희생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