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 부활? 욕심만 앞설뿐
인맥은 70대 후반 ‘욕심’이 앞설 뿐
대우재단은 1980년 김우중 전 회장이 총 250억원 상당의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현재 \"대우인회\"등이 입주해 있다.
‘10년 만의 화려한 외출’.
지난 2월 12일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 중식당에서 있었던 옛 대우그룹 경영진들의 만찬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우그룹 부활’과 맞물리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이번 모임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초청으로 마련된 자리다. 이날 윤영석 전 대우그룹 총괄회장을 포함해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 정주호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 ‘세계경영’을 함께했던 핵심 ‘대우맨’ 4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우중 전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백기승 전 홍보이사는 이날 모임에 대해 “대우 출신 임원들은 대부분 70대 초반으로, 그야말로 서로의 안부나 묻기 위해 자리를 함께한 것”이라며 “대우그룹 부활이라는 흥미 유발형 주제보다는 대우사태가 왜 발생했고,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 과연 바른 길이었는지를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부활’을 논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김 전 회장과 함께 ‘세계경영’을 이끌던 주역들은 대부분 검찰에 고발돼 형사처벌과 거액의 추징을 받았다.
대우 패망 10년이 지난 현재, 신화의 주역들은 과연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그룹해체 당시 모두 12개에 달했던 계열사의 운명은 또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대우맨’ 중에는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CEO들이 많다.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옛 대우조선공업 상무 출신)과 이동호 대우자판 사장(김우중 회장 수행비서 출신)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우그룹 1세대 임원 대부분은 70대 후반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남상태·이동호 사장 현역으로 활동
79년 대우조선공업에 입사한 남 사장은 주로 재무 분야에서 일했다. 그룹 해체가 한창 진행되던 99년 조선해양 부문의 자금담당 이사를 맡아 애환을 함께 했다.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로도 활동 중인 이동호 사장은 지난해 초 “옛 대우의 맥을 이어 나가겠다”며 야심 찬 목표를 내세워 관심을 받기도 했다.
특히 이 사장은 올 1월 회사 자금난 해소 차원에서 350억원대에 달하는 보유 주식 전량을 우리사주조합에 무상 출연하기도 했다. 세계를 무대로 나아갔던 대우 출신 CEO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김우중 전 회장의 경기고 2년 후배로, 대우그룹 창업 1등 공신인 윤영석 전 대우그룹 총괄회장은 지난 2월 말 플랜트산업협회 회장과 두산중공업 부회장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조선·중공업계 CEO 경력만 25년을 채운 그는 60년대 미국 유명 백화점인 시어즈와 여성의류 납품 계약을 이끌어내는 등 ‘대우신화’를 남긴 주역이기도 하다.
정주호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은 현재까지 대우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경우로 볼 수 있다. 그는 현재 대우그룹 전직 임원 모임인 ‘대우인회’ 4기 회장을 맡고 있다.
대우인회는 지난 2000년 1월 회원 간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서울역 부근에 위치한 대우재단빌딩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김선익(전 대우중공업 부사장)·김세중(전 대우자동차 부사장)·윤병철(전 대우자동차 이사)·한용호(전 대우건설 사장) 씨가 ‘대우인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손태일 전 (주)대우자동차수출부문장, 배순훈 전 대우전자 사장, 장영수 전 대우건설 회장 등이 자문위원으로 등록돼 있다.
김우중 전 회장, 대우 모임 자주 참석
외환위기 당시 대우자동차 회장을 맡아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김태구 전 회장은 현재 넥솔 비상임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지난 2005년 SK㈜ 비상근 고문으로 자리를 옮긴 장병주 전 대우 사장은 현재 SK네트웍스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 대우 기획조정실 출신으로 최근까지 ㈜대우 후신인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을 지냈던 이태용 씨는 2007년 5월 한국투자증권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되기도 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5대양 6대주를 누비던 김우중 전 회장은 99년 10월 중국 공장 방문차 출국했다가 귀국하지 않고 도피행각을 벌였다. 이후 6년 만인 2005년 6월 귀국, 사기대출 등 각종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김 전 회장은 재판 끝에 1심에서 징역 10년에 추징금 21조4484억원을, 항소심에서 징역 8년 6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았다. 지난 2007년 12월 특별 사면돼 최근 활동을 재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대우그룹 계열사들도 지난 10년 동안 부침을 거듭하면서 시련의 과정을 겪었다. 당시 12개 기업 가운데 10개가 공적 자금 덕으로 회생했다.
먼저 대우그룹 간판 회사나 다름없었던 ㈜대우는 무역 부문과 건설 부문으로 분리돼 대우인터내셔널과 대우건설로 새롭게 태어났다. 대우건설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7년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매각된 후 워크아웃에서 벗어났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1998년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래 2006년과 2007년 각각 한 차례 채권단에 의해 기한을 연장받았다. 이번 3월 말 만료되는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워크아웃 기한은 2011년으로 2년 연장됐다.
당시 알짜기업으로 소문났던 대우중공업 역시 2000년 조선사업부(대우조선공업)와 기계사업부(대우종합기계)로 분리돼 매각됐다. 대우조선공업은 2001년 8월 워크아웃에서 벗어났고, 이듬해 대우조선해양으로 사명을 바꿨다. 현재 지분 구조는 산업은행이 31.26%로 최대주주다.
대우종합기계는 두산그룹으로 넘어가 두산인프라코어란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부채 60조원…전 국민 고통당해
반면 오리온전기는 파산의 길을 걸었으며, 대우버스는 영안모자에, 대우캐피탈은 아주그룹에, 대우전자부품은 신성건설에 각각 매각됐다.
또 대우정밀은 ST중공업에 넘어가 S&T대우로 이름이 변경됐으며, 대우상용차는 인도재벌인 타타그룹에, 다이너스카드는 현대카드에, 대우전자부품은 신성건설에 매각됐다.
한때 국내 재계 서열 2위로, 한국 경제의 세계화 신화를 이끌었던 대우그룹은 1999년 8월 (주)대우 등 12개 계열사가 전격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대규모 차입을 기반으로 한 확장 경영이 가장 큰 문제였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금융 비용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대우채 구입에 따른 개별 손실은 별개로 하더라도, 당시 60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정부가 고스란히 떠안았으니 전 국민이 대우그룹 패망에 따른 지독한 고통을 나눠진 셈이다.
세간에 ‘회사 설립은 쉬워도 청산하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올해로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10년이 지났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으나 한국 경제 곳곳에는 대우그룹의 아픈 흔적이 남아있다. 하나의 기업을 만들고 키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우그룹 부활’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