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해고하지 마라! 해고는 살인이다! 분노하며 시작했던 ‘쌍용차 77일투쟁’. 그 과정에서 겪어야만 했던, 세상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투쟁의 상처들...
애초 잘못은 해외매각을 잘못 추진한 정부에 있었습니다. 또 상하이차는 산업은행과 맺은 특별협정을 파기하면서 쌍용차 독자개발 능력을 무차별적으로 강탈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 정부와 국민에게 말한 1조2,000억원 투자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4년 동안 신차 하나 없이 생존해 온 쌍용자동차!
상하이기차는 먹튀자본의 비열한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며 쌍용차 노동자들과 국민들을 농락하고 스스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후 떠나 버렸습니다.
우리 쌍용차지부는 회사가 어려운지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고, 함께 살자고 외쳤습니다. 이어 대안을 제시했고 국민과 정부에게도 호소했습니다.
사측은 근거 없고 논리에도 맞지 않는 삼정KPMG와 삼일회계법인의 쌍용차 회생방안을 유일한 해법인 것처럼 밀어붙일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정리해고 이상의 다른 대안을 내놓지도 않고 우리 제안을 무시한 것은 처음부터 매각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임금노동자에게 생명과 같은 고용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2,646명에게는 차라리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조합원이 총파업을 결의하고 죽기를 각오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사측은 희망퇴직을 강요했고 산자들에게 파업대오에서 이탈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명단이 발송되기 전까지는 함께 살자고 결의한 동지들이었습니다.
결국 정리해고 명단은 묵묵히 일만 했던 노동자들을, 나약한 노동자와 죽기 살기로 싸우겠다는 결의를 이어갈 전사들로 갈라놓고 말았습니다. 400에서 600, 800, 1,300으로 늘어갔던 파업대오는 환자 이탈, 회유협박, 포기, 두려움, 연행 등으로 줄고 또 줄었습니다.
그러나 결사항전을 결의한 결사대 조합원들은 지도부의 신념을 확인하면서까지 어떤 침탈이 있더라도 현장을 사수해 정리해고를 철회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스스로 파업도구를 만들고, 전술을 짜내고, 하루 2~3시간 수면과 수십 차례 독한 최루액 난사 등 탄압들을 견뎌냈습니다.
지부장인 저 자신도 해고가 죽음이라며 분노하던 우리 조합원들이 이렇게까지 싸울 수 있을지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최후까지 공장을 사수해 낸 동지들은 투사가 아니라 영웅이었다. 77투쟁 전사였습니다.
공권력의 살인적 진압작전, 야만적 비인도적 부식 전기 수도 가스 의료 차단 때문에 한계점은 있었습니다. 끝까지 항전하지 못한 책임은 통감합니다. 살자고 시작한 투쟁이 진압작전에 따른 사고로 끝내 참사로 이어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생산시설이 전소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타협이라는 선택을 했습니다.
요즘도 몽유병 환자처럼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헬기소리, 전경들의 괴성, 사측의 선무방송이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먼저 하늘나라로 간 6명의 영혼이 뇌리에서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