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이 해외서 생산된 수입차를 들여와 수익성 개선에 나섰지만 저조한 국내 공장 가동률을 높이진 못하며 노사 갈등을 키운 모양새가 됐다. 한국GM은 신규 자금과 물량을 부평2공장에 투자해 공장 가동률을 높인다는 방침이나, 노조는 근본적으로 생산성을 향상할 대책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한국GM 국내공장의 근본적인 생산안정화 대책 없이는 노사 갈등은 진행형이 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경영정상화에 돌입한 한국GM은 지난달 중형SUV ‘이쿼녹스’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들여오며 내수 회복에 본격 나섰다. OEM 수입차는 한국GM의 상표를 달고 있지만 사실상 해외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으로 ‘무늬만 국산차’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쿼녹스는 본격적으로 판매에 돌입한 지난달 385대 팔리는 데 그쳤지만 한국GM은 프로모션 정책을 내세워 판매량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트래버스, 콜로라도 등의 추가 수입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GM이 단기 수익성을 높여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OEM 수입차로 제품군을 꾸릴 경우 국내에서 직접 생산 시 발생할 생산비 및 인건비 지출을 줄여 판매량 대비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는 까닭이다. 해외 시장에서 상품성을 검증받은 제품을 그대로 국내에 판매한다는 이점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차 생산 설비를 갖추고 생산하기까지 길게는 4~5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인건비 등 고정비지출이 증가하면 회사 매출 실적이 호전되기 전까진 경영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GM은 지난해 철수설이 불거지며 내수 판매량은 물론 경영 실적에 타격을 입은 만큼, 수익성 개선에 집중하는 전략을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국GM의 수입차 전략이 저조한 공장 가동률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노사 갈등의 불씨를 계속 키워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공장의 근본적인 생산안정화는 이뤄지지 않은 채 단순히 판매 실적 챙기기에만 급급했다는 얘기다.
실제 수입차 제품군이 늘어남에 따라 한국GM의 국내 생산 제품은 일부 단종되며 공장 가동률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올해 캡티바 단종에 이어 군산공장 폐쇄와 함께 올란도, 크루즈가 올해로 생산이 중단되면서 국내 생산하는 내수 판매 제품은 스파크, 트랙스, 말리부 정도로 줄었다. 특히 말리부와 캡티바를 생산해 온 부평2공장은 공장 가동률이 30%에 그치며 저조한 생산량을 보이고 있다. 연간 생산 능력은 18만대지만 실제 생산량은 지난해 기준 6만5000대가량에 그쳤다.
이에 한국GM은 부평2공장을 1교대제 전환한 뒤 내년 하반기 생산 물량을 확보하는 대로 2교대제로 복귀하는 대안을 제안했다. 내년 중 부평2공장에 트랙스 7만5000대를 추가 배치되기 전까지 1교대제로 운영한다는 제안이다. 올해 말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돼 출시되는 말리부 생산 물량이 반영되면 내년 하반기 중심으로 부평2공장의 공장 가동률은 80%까지 회복될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그러나 노조는 사측이 근본적인 생산안정화 대책 없이 무리한 근무제 개편을 추진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해 폐쇄된 군산공장 역시 신차 투입 없이 1교대제 전환을 감행함에 따라 인력 감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향후 부평2공장에서 생산될 트랙스 역시 현세대 모델로 2년여 기간의 공장 가동률만 보장할 예정이다.
노조는 근본적으로 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도록 경쟁력 있는 신차의 국내 생산을 요구해왔다. 노조는 사측과의 임단협에서 픽업트럭 ‘콜로라도’의 국내 생산을 강하게 주장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해철 한국GM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이쿼녹스가 국내서 동급 차종에 비해 가격이나 제원 측면에서 크게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지난 임단협에선 콜로라도를 국내에서 직접 생산해 판매할 것을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경쟁력 있는 신차를 통해 국내 공장의 근본적인 생산 안정화를 이뤄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노조는 이 같이 근본적인 생산대책 없는 상황에서 신설 법인을 설립한다는 계획에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GM은 연말까지 R&D(연구개발)를 전담할 신규 법인을 설립한다는 계획이나, 노조는 신규 법인이 아닌 기존 법인을 생산공장과 R&D시설로 분리할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경우 생산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국내공장은 폐쇄나 매각 절차를 밟게 돼 고용불안을 가중할 것으로 노조는 우려하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해 한국GM 관계자는 “아직까지 신설 법인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규모로 이뤄질지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GM은 신규 투자금을 공장가동률을 높이는 데 활용해 GM 본사의 ‘먹튀설’을 불식시킨다는 방침이다. 다만 업계에선 향후 신차 배정 등 계획을 더 신중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구체적인 생산안정화 방안 없이는 노사 갈등이 봉합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공장이 생산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수입차로 단기 수익성만 챙기고 공적 자금으로 경영을 지탱하는 방식은 ‘언발의 오줌누기’식 정책이다. 장기적인 측면에선 국내 생산성을 강화하고 내수는 물론, 해외 시장에 수출하며 시장 경쟁력과 생산안정화 동시에 챙기는 방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