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력을 사용하는 실제 사용자는 원청입니다. 이것이 상식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청과의 직접교섭을 요구하는 투쟁에 나섰지만 원청 업체는 교섭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사간의 중재와 조정 기능을 가진 노동위원회마저 사측 편들기로 일관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아산, 울산, 전주 비정규직 세 지회는 지난 달 3일 원청인 현대자동차에 단체교섭 요구 공문을 전달했다. 그리고 6월 10일, 15일, 22일, 7월 6일까지 4차례에 걸쳐 교섭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단 한 차례도 교섭에 나오지 않았다. 결국 지난 달 22일 세 지회는 회사의 의도적인 교섭해태로 정상적인 교섭이 어렵다고 판단,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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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16일 중앙노동위원회 앞에서 열린 '원청사용자성 인정과 파견확대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조합원들이 현대기아차그룹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동준 |
원청, 교섭대상 맞다
지난 3월 25일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소송에서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면 그 시정을 명하는 구제명령을 이행하여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회사가 작업시간과 작업 일정을 관리, 통제 ▲사내하청업체는 이미 확정되어 있는 업무에 어느 근로자를 종사시킬지 여부에 관해서만 결정 ▲원청회사가 제공한 도구 및 자재 사용 ▲원청회사 직영근로자와 함께 선박건조업무에 종사 ▲원청회사 공정관리자(직영반장이나 팀장)의 지휘∙감독 하에 놓여 있었던 점 등을 판결의 근거로 제시했다.
대구지역 건설노조 소송에 대해 2007년 4월 5일 대구고등법원도 “원청업체가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최소한 원청업체에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결한 바 있다.
대부분의 학설 또한 단체교섭에 있어서 실질적 지배력과 영향력이 있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있다. 김형배 교수는 “단체교섭의 당사자가 되는 사용자의 개념을 개별적 근로계약법의 틀 안에서 제한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임종률 교수 또한 “근로계약상의 사용자가 아니더라도 이와 근접 또는 유사한 지위에 있는 자에 대하여 일정한 범위 안에서 단체교섭의 당사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 권두섭 법률원장은 “직접계약 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실제 사용자라는 것은 학계의 통설이기도 하며, 대법원 판결까지 난 것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 도급계약 전에는 임금 제시안 못 낸다”
현대자동차는 컨베어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 또한 원청사와 작업시간 및 작업일정이 동일할 수밖에 없다. 또한 비정규직도 원청의 도구 및 자재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원청조반장의 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원하청 혼성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금속노조 김형우 부위원장은 “작업 시작시간, 휴식시간, 중식시간, 통근버스, 일하는 라인까지 모두 정규직과 동일하게 하고 있다. 실제 비정규직의 임금과 근로조건 모두 현대자동차의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2007년 6월 1일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자동차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의 근로자임을 인정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세 지회는 하청업체와 임금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업체에서는 어떠한 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아산공장사내하청지회 송성훈 지회장은 “지노위 조정회의 자리에서 하청업체 사장이 직접 현대차와 도급 계약이 맺어지기 전에는 안을 낼 수 없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또한 현대자동차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 셈.
실제 현대자동차는 2006년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비롯해 비정규직 노동자와 임금협의 등 실제 교섭을 진행한 적이 있다. 노조 최병승 미조직비정규국장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원청 노사가 별도요구안으로 하청노동자에 대한 임금인상안을 결정해왔고, 모든 협력업체는 이에 따라 동일하게 임금을 인상했다. 또한 최 국장은 “2003년에는 현대자동차가 확약서를 만들어 수당을 신설하기도 했다. 그리고 원청의 확약서, 합의서 등에 따라 하청업체의 취업규칙이 그 기준으로 변경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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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16일 김형우 노조부위원장을 비롯한 현대차 각 공장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중앙노동위원회 조정회의장에 들어가고 있다. 신동준 |
노동위원회는 원하청 사측의 꼭두각시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의 조정 만료일인 16일 중노위 별관 회의실 2호에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단체교섭 요구에 대한 2차 조정회의가 열렸다. 금속노조 비정규직투쟁본부는 조정회의에 앞서 오후 1시 30분 노동위원회의 파행 운영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세 지회는 하청업체가 임금협상 교섭을 해태하고 있는 것과 관련 부산, 전북, 충남 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했다. 하지만 충남 지노위는 비정규직 지회 조합원 중 1 명이 해고자라는 이유로 조정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한 전북 지노위는 회사가 교섭을 해태하고 어떠한 안도 제출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정 만료일이 7월 2일 12시를 넘겨 새벽 2시 30분 좀 더 교섭을 진행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렸다. 노동위원회의 중재를 통해 실질적 교섭이 이뤄지기를 기대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또 다시 묵살되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지노위의 행태에 대해 “노사간의 조정과 중재를 통해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야 할 노동위원회가 원하청 사측의 꼭두각시가 되어 하청노동자의 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제약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하며, “중노위가 단체교섭을 의도적으로 해태하는 현대자동차의 교섭 참여를 중재하거나 요구안에 대한 내용적 조정안을 도출해 내기 위한 역할을 수행할 것”을 촉구했다.
중노위가 회사에 교섭 나오라고 할 권한 없다?
하지만 16일 오후 2시부터 진행된 2차 조정회의에서 노동자들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조정위원회의 사용자위원은 “노조 측에서 현대중공업 판결을 이야기하는데 판결에서는 지배개입만 얘기했을 뿐 교섭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노조가 확대해석 하는 것 아니냐”며 지회의 요구가 부적절하다고 제기했다.
하지만 권두섭 법률원장은 “실질적 지배력과 영향력이 있는 사용자의 책임이라는 것은 지배개입과 단체교섭의무 모두 동일한 것”이라며 “단체교섭의무를 행하지 않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단체교섭의무를 가진 사용자와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사용자가 다르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못 박았다. 또한 권 원장은 “현대중공업 판결과 현대자동차 사례는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모든 현장 사건이 대법원 판결을 받아와야된다는 식의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사용자위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또한 조정위원회 의장은 “교섭의무가 있는 현대자동차가 교섭을 해태하고 있으니 교섭에 나오게 해달라는 것이 조정 신청의 취지인데, 현대자동차가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구제신청 절차가 따로 있다”며 “조정위원회가 교섭에 임하라고 조정할 권한이 있냐”고 묻기도 했다. 권 원장이 “조정신청서에 지회의 요구안을 제출했고 권한을 가지고 있는 회사에 교섭을 요구한 것이니, 내용을 보고 조정위원회가 적절한 조정안을 내면 될 문제”라고 답했으나 의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한계적이다”라며 조정 역할 자체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세 지회는 15일과 16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앞서 세 지회는 5월 29일 통합대의원회의를 통해 공동요구안을 결정했다. 지회는 공동요구 쟁취를 위해 올 해 공동투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