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처럼 번진 복수노조 설립, 단결권의
취지와 제도적 현실의 어긋남
2013년 2월 현재 금속노조 내에 복수노조 사업장은 모두 47개. 그 중 금속노조가
다수를 점하고 있는 10개 사업장과 교섭단위가 분리돼있거나 또는 관행적으로 자율교섭을 해오고 있는 6개 사업장을 제외한 31개 사업장에서는
금속노조가 소수노조로 위치해있다. 노조법상 기업별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 2011년 7월 1일 이후 설립된 복수노조는 모두 25개 사업장이며,
그 중 금속노조는 7개 사업장에서 다수를, 18개 사업장에서 소수를 점하고 있다.
헌법 제33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노동자의
자주적 단결권을 보장하는 취지로만 해석한다면 복수노조 설립을 그 자체로서 부정하는 주장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행 강제적 교섭창구단일화
절차 속에서 민주노조 탄압을 목적으로,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복수노조 설립 시도들을 보고 있자면, 제도적 현실이 헌법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오히려 유린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복수노조는 현장에서 누가 주도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설립되고 있을까?
복수노조가 설립된 사업장의 조합원들은 어떤 심리상태에 놓여있을까? 법문구나 제도의 취지가 아닌 현실에서의 복수노조 설립은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며 어떠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금속노조는 지난 2월 금속노조 산하 7개의 복수노조 사업장, 506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7개 사업장 모두 2011년 7월 1일 이후 복수노조가 설립된 곳이며, 이 과정에서 금속노조는 소수노조로
바뀌었다. 이번 이슈페이퍼에서는 설문조사 결과 중 일부 내용을 발췌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노조 무력화
수단으로서의 복수노조, 그리고 우리 내부의 취약함
먼저 복수노조 설립을 주도한 집단이 누구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아래의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체 응답자의 45.5%(225명)는 ‘전직 지회간부’를 지목하고 있었으며, 그 다음으로
‘현장관리자’(33.5%), ‘기존에 노조활동을 하지 않던 조합원’(13.9%)이 복수노조 설립을 주도했다고 응답했다.
구분 |
현직 지회간부 |
전직 지회간부 |
현장
관리자 |
노조활동
전혀
없던 조합원 |
동문회, 친목회 간부 |
전체 |
전체 |
17
(3.4) |
225
(45.5) |
166
(33.5) |
69
(13.9) |
18
(3.6) |
495
(100.0) |
<표 1> 복수노조 설립을 주도한 집단 (단위: 명, %)
주목할 점은 각 사업장별로 응답분포가 확연히 나뉜다는 점인데, -표로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3개 사업장의
경우 ‘전직지회 간부’를 꼽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 데 반해, 나머지 4개 사업장에서는 ‘현장관리자’를 지목한 비율이 매우 높았다.
특히 현장관리자가 복수노조 설립을 주도했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난 4개 사업장에서는 다른 3개 사업장과는 달리 기존에 노조활동을 전혀 하지 않던
조합원을 지목한 비율도 높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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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복수노조 설립을 주도한
집단 |
이러한 결과는 회사의 복수노조 설립 시도주1)가 하나의 일반화된 패턴이 아니라
사업장별로 다양한 유형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시사하며, 그 중 대표적으로 전직 지회간부를 포섭·동원하는 방식과 현장관리자를 통해 회사가 직접
개입해 들어가는 방식 두 가지를 꼽아볼 수 있다. 전자가 기존에 조합원에 대한 영향력과 신뢰관계를 가진 전직 지회간부들, 나아가 이들의 영향력이
작동하는 범위 내의 조합원들을 포섭·동원해 새로운 노조를 설립하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현장관리자가 기존노조의 조합원이기는 하나 노조활동에
소극적인 사람들을 포섭해 보다 직접적으로 복수노조 설립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물론 위와 같은 회사의 복수노조 설립 시도는 사업장별 맥락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어떠한 내용으로든 전현직 노조간부 간에 갈등구도가 형성돼있고 지회의 일상적 조직력이 취약한
상황에서는 전직 지회간부를 매개로 복수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보다 높을 것으로 짐작된다(물론 이들 각각은 하나의 유형일 뿐 실제 현장에서는 여러
방식들이 혼재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주1)복수노조 설립 주도 집단에 대한 응답이나
소속 사업장에 관계없이 응답자의 다수는 복수노조를 회사노조에 다름 아니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사업장 내에 만들어진 복수노조에 대한 평가에 있어
응답자의 70.7%(355명)는 “회사노조에 불과하다”고 응답했으며, 26.7%(134명)는 “이름만 노조일 뿐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2.6%(13명)만이 “회사가 만들었지만 나름 활동하려고 한다”고 응답했다.
구분 |
지회 조직력의 취약함 |
회사의 민주노조 파괴기도 |
노노분열과 갈등 |
금속노조이기 때문에 |
기타 |
전체 |
전체 |
32
(6.4) |
391
(78.0) |
61
(12.2) |
8
(1.6) |
9
(1.8) |
501
(100.0) |
복수노조
주도 |
전직 지회간부 |
20
(7.4) |
201
(74.2) |
40
(14.8) |
3
(1.1) |
7
(2.6) |
271
(100.0) |
현장관리자 |
12
(5.2) |
190
(82.6) |
21
(9.1) |
5
(2.2) |
2
(.9) |
230
(100.0) |
<표 2> 복수노조 설립 원인 (단위: 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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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 복수노조 설립
원인 |
지회 조직력의 문제는 위의 <표 2>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사업장 내에 복수노조가 설립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78.0%(391명)는 ‘회사의 민주노조 파괴 기도’에 의해 복수노조가 설립됐다고 응답함으로써 기본적으로
복수노조가 기존 금속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한 수단으로 설립됐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직 지회간부가 복수노조 설립을 주도한 사업장에서는
‘지회 조직력의 취약함’(7.4%)과 ‘기존 노노분열 및 갈등 양상’(14.8%)이 원인이라고 답한 비율이 현장관리자 및 노조활동에 참가하지
않던 조합원이 복수노조 설립을 주도한 사업장(지회 조직력의 취약함 5.2%, 노노분열 및 갈등 9.1%)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아울러 사업장별 복수노조 설립 주도 집단의 차이를 차치하더라도, 전체 응답 결과에서 지회의 취약한 현장조직력 또는
노노갈등 및 분열을 지적한 비율은 18.6%에 이르고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복수노조 설립이 비단 회사의 노조 무력화 의도와 일련의 방식들을
통해서만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라 금속노조 내부의 취약함이 배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에게 깊은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회적 관계의 단절과 생산성의 딜레마
다음으로 ‘복수노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29.4%(289명)는 ‘회사의 회유와 협박’을 꼽았고, 그 다음으로 ‘노무컨설팅업체’(20.2%, 198명), ‘복수노조로 넘어간
노조간부들’(14.8%, 145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회사’, ‘전직 노조간부’, ‘노무컨설팅업체’ 등 복수노조 설립에 관여한
집단들을 연상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복수노조 설립 주도 집단에 관계없이- ‘회사의 회유와 협박’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사업장 내에서 복수노조 설립이 시도될 경우 회사의 회유와 협박이
동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결과를 보여주는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예상과는 달리 현장관리자가 복수노조 설립을
주도했던 사업장(26.8%)보다는 전직 지회간부가 주도했던 사업장(31.7%)에서 회사의 회유와 협박을 연상하는 비율이 다소 높았다는 점이다.
그 차이가 적기 때문에 예단할 수는 없겠으나, 일반 조합원이 회사의 회유와 협박의 위험성을 인식하는 강도는 ‘회사가 현장관리자를 통해 직접
접촉해오는 경우’에 비해 ‘그동안 함께 노조활동을 해왔던 전직 지회간부가 복수노조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더 높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한편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14.6%로 나타나 복수노조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부정적으로 구축돼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분 |
생각
하고 싶지 않다 |
창조
컨설팅 같은 노무
컨설팅업체 |
동료들 |
복수
노조로 넘어간 간부들 |
회사의 회유와 협박 |
가족들 |
초창기 민주노조시절 |
직장
폐쇄 |
기타 |
전체 |
전체 |
143
(14.6) |
198
(20.2) |
67
(6.8) |
145
(14.8) |
289
(29.4) |
4
(.4) |
26
(2.6) |
103
(10.5) |
7
(.7) |
982
(100.0) |
복수노조
주도 |
전직 지회간부 |
84
(15.9) |
78
(14.8) |
39
(7.4) |
103
(19.5) |
167
(31.7) |
1
(.2) |
18
(3.4) |
31
(5.9) |
6
(1.1) |
527
(100.0) |
현장관리자 |
59
(13.0) |
120
(26.4) |
28
(6.2) |
42
(9.2) |
122
(26.8) |
3
(.7) |
8
(1.8) |
72
(15.8) |
1
(.2) |
455
(100.0) |
<표 3> ‘복수노조’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중복응답) (단위: 명, %)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현장관리자 및 노조활동을 하지 않던 기존노조의
조합원이 복수노조 설립을 주도한 사업장에서는 전직 지회간부가 주도한 사업장에 비해 ‘노무컨설팅업체’(26.4%), ‘직장폐쇄’(15.8%)를
연상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회사가 현장관리자를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복수노조 설립을 시도할 경우, 노무컨설팅업체의
자문을 받는 것과 더불어 직장폐쇄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이용해 위험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합원 포섭을 시도한다는 점을
짐작토록 한다. 기존노조 내의 노노갈등이 회사의 입장에서는 복수노조 설립에 악용할 자원이 된다는 점을 감안해본다면, 이러한 요인이 없는
작업장에서는 회사가 노무컨설팅업체와 각종 제도적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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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3] ‘복수노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중복응답) |
그렇다면 복수노조가 생긴 이후 현장에서는 어떤 변화들이 나타났을까? 아래의 <표 4>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체 응답자의 26.9%(263명)는 ‘동료들 간에 대화가 줄었다’는 점을 가장 큰 변화로 꼽았으며, 그 다음으로 ‘회사에 대한 분노가
커졌다’는 응답이 24.8%(242명), ‘생산량이 늘고 생산속도가 빨라졌다’는 응답이 19.5%(191명) 등으로 나타났다.
특기할 점은 복수노조 설립을 주도한 집단이 누구인지에 관계없이 ‘회사에 대한 분노가 높아졌다’는 응답이 대체로 높게 나타난
가운데, 전직 지회간부가 주도한 사업장에서는 ‘동료들 간에 대화가 줄었다’는 응답(31.9%)이 가장 높게 나타난 반면 현장관리자가 주도한
사업장의 경우에는 ‘생산량이 늘고 생산속도가 빨라졌다’는 응답(30.2%)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회사의 복수노조 설립 시도가
표면적으로는 기존노조의 무력화에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현장권력을 장악함으로써 회사의 입맛에 따라 생산성을 높이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 있다고
가정해본다면, 위의 결과는 생산성을 둘러싼 복수노조의 딜레마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함의하는 바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