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4일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를 떠나보냈다. 24일 부산에서 최강서 열사 장례가 ‘전국노동자장’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12월21일 ‘손배가압류 철회, 민주노조 사수’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지 66일, 회사의 답을 기다리다 영도조선소 단결의 광장에 임시 안치된 지 26일 만이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없는 세상으로 편히 가소서.” 장례에 모인 이들이 한 마음으로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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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24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단결의 광장에 열린 최강서 열사 전국노동자장 발인식에서 열사의 부인이 아들의 볼에 입을 맞추고 있다. 부인은 "아들아, 아빠와 약속을 지켰다"며 오열했다. 부인은 열사의 곁을 지키느라 아이들과 떨어져 있었다. 신동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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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24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단결의 광장에 열린 최강서 열사 전국노동자장 발인식에서 열사의 두 아들이 아빠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신동준 |
오전 8시 부산 한진중공업 공장 안에서 발인제가 진행됐다. 유가족과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 전국의 연대 동지들이 최강서 열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유가족과 지회 조합원들은 최강서 열사의 영정을 들고 공장 안 생활관과 열사가 목숨걸고 지키고자 했던 지회 사무실을 마지막으로 순회했다. 열사의 어머니는 아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오열했고, 부인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열사가 그렇게도 들어오고 싶어했던 공장 안을 함께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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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24일 최강서 열사의 영정이 한진중공업지회를 나서고 있다. 신동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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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24일 최강서 열사 전국노동자장 발인식을 마친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이 열사를 공장 앞 영결식장으로 운구하고 있다. 신동준 |
이들은 발인제를 마친 뒤 열사의 시신을 공장 정문 앞 영결식 장으로 옮겼다. 최강서 열사가 죽은 뒤에도 대화 한 번 하지 않은 채 굳게 닫혔던 정문, 어쩔 수 없이 공장 안에 임시 안치 된 뒤에도 경찰에 의해 가로막혔던 철문이 이날에서야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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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24일 최강서 열사 전국노동자장 영결식장 뒤에 모신 열사 앞에서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동준 |
영결식은 오전 9시 한진중공업 정문 앞에서 열렸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백석근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은 “10년 전 크레인에서 129일을 버텼던 김주익 열사와 최강서 열사의 유서가 같고, 박창수와 최강서의 얼굴이 같다”며 “열사는 박근혜 정부에 맞서 투쟁해야 하는 과제를 우리에게 남겼다. 동지를 떠나보내지만 그 숭고한 뜻을 받들어 반드시 민주노조를 지켜내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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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24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열린 최강서 열사 전국노동자장 영결식에서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이 묵념하고 있다. 신동준 |
백기완 장례위원회 고문도 “악독한 조남호와 자본가들, 이명박, 박근혜는 최강서의 불씨 앞에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어라”라고 호통을 치며 “강서야, 우리가 네가 뿌린 불씨를 따라가겠다. 짓밟히고 짓밟혔지만 넌 결코 지지 않았다”고 최강서 열사에게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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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24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열린 최강서 열사 전국노동자장 영결식에 참석한 노동자, 시민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신동준 |
동지를 떠나보내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열사의 유언을 따라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다시금 다졌다. 차해도 한진중공업지회장은 “강서를 떠나보내지만 마지막 유언을 아직 지키지 못했다”며 “내일이면 단결의 광장과 정문 천막을 걷겠지만, 우리는 강서를 묻은 뒤 다시 투쟁의 깃발을 움켜쥐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지들, 분명히 약속하겠습니다. 강서의 뜻 이어받기 위해 한진 자본에 맞서 꿋꿋하게 투쟁하고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가겠습니다. 전국의 투쟁 중인 동지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고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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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24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열린 최강서 열사 전국노동자장 영결식에서 열사의 부인이 유족 인사를 하다 열사를 부르며 눈물을 떨구고 있다. 신동준 |
이용대 조합원도 “강서야 미안하다. 우리에게 조금 더 힘이 있었다면 너를 차가운 냉동고에, 콘크리트 바닥에 그렇게 오래 두지 않았을텐데. 우리 이제는 너무 슬퍼하지 말자. 우리 산자들이 네 맺힌 한을 반드시 풀어주꾸마”라는 시를 낭독하며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결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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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24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열린 최강서 열사 전국노동자장 영결식에서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이 열사에게 꽃을 바치고 있다. 신동준 |
66일 동안 누구보다 아픈 마음으로 최강서 열사를 지키며 투쟁했던 유가족들도 영결식에 모인 동지들과 열사에게 인사를 전했다. 열사의 부인 이선화씨는 “회사와 언론에 의해 질타도 많이 받았지만 당신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했는지, 복직 3시간 만에 쫓겨나며 절망하는 것, 악랄한 자본 때문에 분노하는 것 다 지켜본 나는 그냥 회사와 손잡고 당신 목숨값 받고 끝낼 수는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아주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라고 유가족들에게 많이 미안해하시지만 한진 동지들, 전국에서 도와주고 응원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여보, 나도 끝까지 했는데 잘했지. 결국 당신 죽음이 생활고로 인한 비관자살이 아니라는 것 밝혀졌고, 아이들에게도 평생 자랑스러운 아빠로 남게 됐어. 보내야 하는데, 정말 못 보내겠어. 하지만 이제 잘가, 그리고 우리 지켜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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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24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열린 최강서 열사 전국노동자장 영결식을 마친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이 열사를 꽃상여에 태워 노제가 열리는 부산역으로 행진하고 있다. 신동준 |
영결식을 마친 장례 참가자들은 한진중공업에서 노제를 진행할 부산역까지 행진했다. 참가자들은 꽃상여와 만장, 영정을 들고 최강서 열사의 마지막 길을 부산 시민들에게 알렸다.
12시 부산역에서 노제가 진행됐다. 김재하 민주노총 부산본부장은 “최강서 열사는 산 자들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며 “민주노조 사수, 그리고 전 민중의 연대를 통해 노동자 민중 세상을 만드는 것이 열사의 뜻”이라고 이후의 투쟁을 다짐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도 추도사를 통해 민주노조 사수 투쟁을 결의하자고 밝혔다. 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조합원 동지들, 최강서 열사가 끝내 자신을 던져가며 지키고자 했던 것은 민주노조, 그리고 여러분이었다”며 “어떻게 지켜온 민주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입니까. 그것만은 잊지 맙시다. 최강서 그 이름을 죽어서도 잊지맙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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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24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열린 최강서 열사 전국노동자장 영결식을 마친 노동자, 시민들이 열사와 함께 노제가 열리는 부산역으로 행진하고 있다. 신동준 |
오후 3시 경남 양산 솥발산 공원묘지 하관식을 끝으로 최강서 열사 장례를 마무리했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등 한진중공업의 세 열사를 묻은 솥발산 묘역에 최강서 열사를 안장하며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도 66일간 입고 있던 상복을 모두 벗었다. 그리고 이제 더 큰 투쟁으로 열사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김종인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은 “열사와 약속을 다 지키지 못한 채 장례를 치러 죄송하다”며 “이제는 정말 죽을 각오로 싸워서 반드시 승리하자”고 결의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