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4일, 삼성지회가 조직전환을 통해 노조 경기지부로 들어오자 삼성 에버랜드 관계자는 “국내 대표 서비스 기업인 에버랜드가 어떻게 금속노조와 관련이 있는지 의문이고 사업과 무관한 금속노조에 가입한 것은 더욱 황당무계한 일”이라고 말했다.
삼성지회에 소속된 조합원들 절대 다수가 에버랜드 소속이며 에버랜드 리조트 사업부의 주방장들과 홀매니저들 이다. 이 조합원들은 2011년 노조 설립 이후 여러 경로를 거쳐 올해 노조의 울타리로 들어왔다. 회사의 ‘황당함’과 달리 이 조합원들은 오랫동안 금속노조 가입을 원했다고 한다. ‘강성노조’로 알려진 금속노조만이 삼성의 탄압에 맞선 투쟁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노조로 가입해 지회 이름을 처음으로 얻은 삼성지회. 아직 조합원들은 적은 수지만 이제 노조와 삼성도 공식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삼성 조직화는 민주노총과 노조가 조직 확대 사업을 계획할 때마다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의 노조 조직화 사업은 왜 더디기만 했을까.
삼성 조직화의 함정, 삼성공포증과 불신
복수노조가 허용되기 전까지 삼성의 노조 봉쇄 정책은 추악했다. 첫째, 이름뿐인 종이노조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삼성 78개 계열사 중에서 9개 사업장에 노조가 있다. 삼성생명보험, 삼성정밀화학, 삼성화재, 삼성메디슨, 삼성증권, 삼성중공업, 에스원, 신라호텔, 에버랜드. 이중 에버랜드노조는 지난 2011년 7월1일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되자 현 삼성지회(당시 삼성노조)를 염두에 두고 7월초에 만들어 바로 단체협약까지 체결했다고 한다. 현 삼성지회(당시 삼성노조)는 2011년 7월 18일에 설립됐다.
삼성지회를 제외한 다른 9개 노조는 어떤 상황일까. 삼성중공업노조 사무실은 조선소 안의 한 건물 옥상에 옥탑방처럼 있는데 항상 자물쇠로 잠겨 있다고 한다. 조선소 노조가 이런 상태니 다른 노조들은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다.
둘째, 납치와 감금, 미행 등 온갖 폭력적인 노조조직화 사전 진압이다. 2004년에 삼성SDI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벌어진 일이다. 또 삼성화재 노동자 한용기 씨도 2009년 직군통합의 부당성과 2010년 삼성화재 불법로비 의혹을 제보한 뒤 3주간 감금됐다. 한용기 씨는 감금 기간 내내 회사관리자로부터 “일본으로 가면 안 되겠느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했다. 결국 몇 달 뒤 해고됐다.
셋째, 추악한 돈을 통한 매수였다. 삼성 계열사들은 회사의 약점을 집어내 제기한 사람들을 다른 계열사로 옮기거나 최후에는 돈을 주는 방식으로 무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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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15일 삼성지회 간부 조합원들이 지회 현판식을 하고 있다. 지회 제공 |
복수노조가 허용되지 않았어도 노조 조직화는 이뤄져 왔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삼성의 노조 탄압 방식은 노조를 설립하려는 노동자들과 이를 도우려는 간부와 활동가들에게 어려움을 주었다.
어려움 중 가장 큰 것은 삼성의 무자비하고 숨 막힐 듯한 탄압이 주는 공포심이다. 삼성을 조직화 하려는 노동자들과 노조 간부, 활동가들은 삼성으로부터 도청, 감금, 약점 노출 심지어 일본으로 몰래 납치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 정도는 했을 것이다.
또 추악한 돈 매수 방식은 삼성에 노조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노동자들에게도 통했기 때문에 누가 진짜 알맹이 주체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삼성노동자들끼리도, 조직화를 도우려는 활동가들조차 혹시 누가 삼성의 돈 매수 제기를 받은 건 아닌지 서로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삼성을 조직하려면 공포심과 불신을 극복해야 한다.
삼성공포심, 사회서도 통해
사실 삼성에 대한 공포심 조장은 노조 탄압보다 훨씬 대중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시민들은 삼성 비리를 폭로한 용감한 사람들이 세상의 주목을 받았지만 결과는 씁쓸하다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전직 삼성그룹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는 비자금 50억원과 ‘떡값’ 검사 명단 일부를 공개했다. 용감한 김용철 변호사는 폭로 이후에도 법조인으로 활동하기를 원했고, 김 변호사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그가 존경받는 법조인으로 이름을 날렸으면 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부천에서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전 의원 역시 삼성의 ‘떡값’을 받은 현직검사 7명의 실명을 인터넷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지난 14일 대법원은 노회찬 의원에게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의원직을 박탈했다.
용감한 삼성비리 폭로자들의 씁쓸한 현실에 비해 삼성 ‘떡값 장학생’들은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당시 '떡값 검사' 명단에 있던 임채진은 검찰총장을 지냈고, 이귀남 당시 대검중앙수사부장도 아무런 법적 제재 없이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다. 노회찬 의원이 공개한 7명의 검사들은 김앤장 변호사, 법무부장관, LG전자 사외이사, 대한공증인협회장,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 보광훼미리마트 대표이사, 특별감찰본부장 및 언론중재위원 등의 활동했거나 하고 있다. 삼성을 잘못 건드리면 본인만 쪽박 찰 수 있다는 ‘삼성공포증’의 대표적 사례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삼성을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처럼 만드는 것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경제적 위상도 한 몫 한다. 삼성그룹 전체 매출 중 70% 가량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액 201조원, 영업이익이 무려 29조원으로 국내 최고 기업이다. 지난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기업순위에서 삼성전자는 무려 26위에 올라 있다. 바로 앞에 도요타(25위)가 있고, IBM(32위), 네슬레(40위), 마이크로소프트(42위), 포드(44위), 지엠(63위), 현대기아차(96위)를 앞지르고 있다.
삼성은 정치경제적으로, 노동탄압에도 굳건한 철옹성 같이 보인다. 그러나 삼성은 완벽하지 않다. 조건준 경기지부 교육선전부장은 “비리 폭로에도 무너지지 않는 완벽한 삼성도 실패 사례들이 많다는 것을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삼성 계열사에서 젊은 노동자들이 직업성 암으로 사망했고, 평범했던 희생자 가족들은 거대한 삼성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공유정옥 산업보건전문의는 2007년부터 삼성의 직업병 불인정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에 따르면 2012년 9월 30일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LCD, 휴대폰 사업부,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테크윈 등을 포함해 총 151건의 제보가 있었고 그 중 58명이 사망했다. 절반 이상이 혈액암으로 사망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활동가이기도 한 공유정옥 전문의는 삼성이 순순히 인정했다면 싸움이 이렇게 길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 의사는 “삼성은 마치 대소변을 못 가리는 거대한 괴물 같았다”고 말한다. 혈액암으로 사망한 황유미 씨 아버지 혼자서 시작한 싸움이지만 지금은 점점 제보자들도 늘고 연대하는 단위와 사람들도 늘고 있다. 게다가 싸움 영역도 훨씬 넓어지고 있다. “반올림 투쟁은 암으로 사망한 노동자 문제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직업병을 유발하는 삼성에 납품하는 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의 건강권까지 고민하고 있고, 우리가 그 고리를 끊어보자”로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거대 삼성을 향한 저항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무노조 경영’ 구멍은 경기지부 삼성지회
삼성의 가장 큰 실패는 무노조 경영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는 것. 물론 삼성지회 조합원들 역시 에버랜드 사측의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 사업장 내 ‘왕따’를 겪고 있다.
노조 설립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조장희 부지회장은 지난 2011년 7월 18일 노조 설립하는 날 해고당했다. 해고 사유는 회사의 경영기밀을 빼돌렸다는 것. 사실 그가 한 일은 삼성계열사 내부 거래의 핵심인 에버랜드가 다른 계열사에게 터무니없는 웃돈을 건넨 것을 회사에 알린 것뿐이다. 사측은 당연히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삼성은 삼성지회 조합원들이 접촉한 동료 노동자들을 괴롭히거나 전출 혹은 배치전환 하는 탄압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게다가 사측이 걸어놓은 소송만 30여건에 달한다. 조합원 조직화에 집중하기보다 휴가 내고 재판 쫓아다니는 시간이 많도록 만든 회사의 작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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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의 가장 큰 실패는 무노조 경영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 용인에 있는 에버랜드가 을씨년스럽다. 박정미 |
그러나 삼성지회 조합원들이 노조의 귀중함을 느끼는 것은 실천적인 경험 때문이다. 특히 조장희 부지회장은 2002년부터 2008년까지 6년간 노사협의회 노동자 측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노사협의회의 맹점을 체감했다. 껍데기만 있던 노사협의회 사상 처음으로 경선을 통해 당선된 뒤 임기 2년짜리 노사협의회 위원을 세번이나 했지만 회사와의 싸움은 늘 한계가 있었다.
불합리한 인사고과, 삼성계열사 중에서도 낮은 임금, 불규칙한 노동시간과 휴게시간, 부족인원에 대한 고용 촉구 같은 중요 쟁점들을 해결하려면 노조 설립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조장희 부지회장과 백승진 사무장은 “아직도 ‘동지’, ‘투쟁’ 이런 단어들이 어색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런 말을 안 썼을 뿐 우리는 투쟁을 해 왔다”고 강조한다.
삼성조직화로 복수노조 시대 활로 찾아야
조건준 경기지부 교육선전부장은 “지금 삼성 조직화의 핵심은 어떻게든 노조로써 안정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삼성지회는 2011년 노조 설립 이후 2년째 노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체들의 의지가 굳건하다고 본다”고 말한다.
노조는 기존 삼성 조직화의 부족함을 성공으로 바꿀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이승현 경기지부 부지부장은 “삼성 조직화 사업은 기존 방식을 새롭게 평가하고, 새로운 조직화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기지부와 삼성지회 조합원들은 그 동안 삼성 조직화가 단기적인 요구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조를 수단으로 이용하고 바로 사라졌던 과거 경험들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삼성 사측은 여전히 비공개, 비공식, 개별적 방식을 선호한다. 아니나 다를까 지부와 삼성지회가 사측에 간담회 요청을 하자 사측은 비공식 접촉을 시도해 왔다. 경기지부와 삼성지회는 공식적인 공문과 공개적인 간담회 등을 요구하기로 했다. 사측의 비밀주의와 비공개 접촉은 노조에 전혀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지부와 삼성지회는 노조로써 성격을 분명히 하기 위해 단체교섭 요구도 준비하고 있다. 에버랜드기업노조의 단체협약이 오는 6월 29일에 만료됨에 따라 삼성지회도 교섭을 요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구안을 마련한 뒤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임단협 쟁취를 위해 필요하다면 쟁의행위까지 벌일 계획이다. 노조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다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노조에 들어온 삼성지회를 안정적인 노조로 안착시키는 초기 사업이 경기지부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복수노조 시대에 금속노조가 그 동안 주창해 왔던 삼성 조직화를 향한 실천의 첫 걸음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