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전히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자본’ 그 자체는 초과이윤만 추구하는 거침없는 폭주기관차처럼 야만적 동력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다. 다만 그러한 자본의 야만성을 국가기관이라는 곳이 조금이라도 제어하고 순화시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될 수 있도록 순치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고 국가권력을 변화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분이 있다. 반면 국가기관이 오히려 자본의 야만성을 가속화시키기 위한 교활한 꾀만 쓴다고 보는 이도 있다.
최근 TV화면 광고 속에서도 자본과 국가의 긴장(?)과 협조(?)가 보여지는 사례들이 나타나 흥미를 끈다. 사건의 발단은 바로 지난 3월 10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나왔던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던진 “MB정부 경제성적 낙제점은 면했다”는 한마디였다. 정부는 즉각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재벌정권이라는 욕을 들어먹으면까지 팍팍 밀어줬는데 대한민국 재벌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그런 평가를 받았으니 약간 섭섭했을 거다. 정부의 반발이 거세지자 3월 16일 삼성그룹의 공식 대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하면서 “정부정책에 적극 협조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동반성장에 최대한 지원하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지난해부터 중단돼 있던 삼성그룹 PR캠페인이 방송사와의 공동 협찬캠페인이라는 변형된 형태로 새로 시작됐다. 이것이 바로 ‘삼성의 동반성장 캠페인’이다. “대한민국 중소기업과 함께 만든 세계인의 베스트셀러, 대한민국 기업들이 언제나 함께 하기에 더 큰 대한민국의 미래가 열립니다”. 다시 말해 MB정부의 동반성장정책에 머리 숙이고 힘껏 도와드리겠다는 삼성의 다짐이 담긴 광고다.
사실 광고의 화면과 톤은 무척이나 세련되고 ‘글로벌’스럽다. 하지만 이면을 알고 보면 무슨 3류 조폭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한풀 꺾인 넘버원 큰 형님을 좀 우습게 알았다가 다시 큰 코 다쳐 끌려온 넘버투 형님이 큰 형님 앞에 무릎 꿇고 싹싹 빌고 있는 장면처럼 비굴함이 묻어난다.
“요즘 수출 좀 되어 제가 좀 우쭐하고 자만했습니다. 이게 다 형님께서 노동자 애들 족쳐서 저를 도와주신 것을 제가 설마 잊었겠습니까? 다시는 형님 뜻에 거스르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뭐 약간의 상상력을 첨가하자면 이런 뉘앙스랄까.
MB정권에 살짝 대들었던 삼성그룹의 반성문 같이 보이는 기업PR캠페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담배 피다 걸린 고등학생이 1백일 동안 매일 반성문 써서 제출하듯이 지금도 매일. 여기서 사실 더 재미있는 것은 뭐가 켕기는지 아무런 일도 없어 보이던 SK그룹에서도 뜬금없이 “스마트 코리아로 대한민국이 더 행복해지고 있습니다”라는 광고캠페인을 시작한 것. 뭐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옆 친구가 끌려가 쥐어 터지니 알아서 상납하는 소심한 친구 같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일까?
분명 자본과 국가권력은 서로 견제하고 소소한 충돌이 일어나는 긴장관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서로 없으면 존재기반이 흔들리는 계약동거 커플처럼 싸우고 토라지더라도 순식간에 반성하고 품어 안으면서 함께 가는 동반자이자 한통속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한화그룹을 들쑤시고 이어서 태광그룹, 그리고 오리온 그룹까지 중소자본을 시리즈로 ‘조지면서’ 군기를 잡고 있는 지금. 2011년은 분명 국가권력이 다소 우위에 서 있는 ‘넘버원’ 형님임이 분명하다.
김범우 / 어느 광고회사 노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