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기아차그룹이 부자간 경영권 승계를 위해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이번엔 부당한 압박을 통해 계열사 및 부품사 노동자의 퇴직연금까지 현대기아차그룹 계열 증권사로 ‘몰아주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금속노조(위원장 박유기)는 5일 성명서를 통해 “현대기아차그룹이 부품사 및 계열사에 HMC투자증권으로의 퇴직연금 독점 계약을 압박하고 있다”며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엄격한 법집행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HMC투자증권은 현대자동차주식회사, 현대모비스 등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사가 주식의 49.6%를 소유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의 종합증권회사다.
김연홍 금속노조 사무차장은 “올해 사업장 임단협 과정에서 회사가 ‘원청사에서 압력 때문에 와서 어쩔 수 없다’, ‘현대기아차 계열사들 대부분 HMC투자증권에 가입할 건데, 우리만 엇나가면 어떻게 되겠냐’는 등의 하소연을 하며, 노조 측에 퇴직연금 사업자 선정을 압박한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김 차장은 “이 같은 일이 계열사뿐 아니라 계열사가 아닌 부품사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며 “현대기아차그룹이 원하청 관계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압력을 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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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MC투자증권은 최대주주인 현대자동차가 주식의 26% 가량을 소유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의 종합증권회사다. |
이 같은 현대기아차그룹의 HMC투자증권 독점계약 압박은 금속노조와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퇴직연금사업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속 노사는 지난 2010년 중앙교섭에서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합의했다. 이에 따라 노사는 지난 5월 18일 교보생명보험, 국민은행, 신한은행, IBK연금보험 등 퇴직연금 운용사업자 네 곳을 공동 선정하고, 표준퇴직연금규약까지 마련한 바 있다.
금속 노사의 공동 퇴직연금 도입 추진은 개별 사업장 별 퇴직연금 도입에 비해 퇴직연금의 공적 성격을 강화하고 연금가입자의 혜택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금속 노사는 이를 위해 퇴직연금사업자들과 퇴직연금 운용을 점검 협의하는 기구인 퇴직연금운영위원회 구성을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그룹의 HMC투자증권으로 퇴직연금을 독점계약할 경우, 이 같은 금속 노사의 퇴직연금 운용 개입은 불가능하게 된다. 퇴직연금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우환섭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이와 관련해 “현대기아차그룹의 압박으로 HMC투자증권에 독점계약이 이뤄지면, 조합원뿐 아니라 사용자의 혜택 역시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우 국장은 HMC투자증권 독점계약으로 조합원들의 안정적인 퇴직연금 수급권 보장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최악의 경우 현대기아차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도래하면, HMC투자증권에만 퇴직연금을 넣어둔 조합원들의 퇴직연금 수급에 비상이 걸릴 수 있다는 것. 이 때문에 노조는 현재 퇴직연금 운용 및 자산관리를 노사가 선정한 네 곳에 가급적 분산시킬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일부 사업자에 퇴직연금을 몰아줄 경우 위험부담이 커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올해 기아차에서 퇴직연금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되기도 했다. 회사는 퇴직연금사업자로 HMC투자증권을 밀고 있지만, 기아차지부는 조합원의 안정적인 퇴직급여 수급을 위해 사업자를 복수로 선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한편 HMC투자증권을 비롯한 재벌 대기업의 퇴직연금 몰아주기 행위는 이미 올해 초부터 공정거래법 위반 논란이 된 바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월 형식적인 판단만으로 위법이 아니라며 면죄부를 줬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는 현대기아차그룹의 부당한 압박과 관련한 구체적 사례를 확보해 공론화 시키는 등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