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상징, 울분의 상징인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을 승리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해 크레인에 오른 지 21일째, 한진중공업 조합원이자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인 김진숙 동지가 공장 바닥에 모여 앉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보기 위해 얼굴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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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6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분쇄 금속노조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노동자들을 향해 김진숙 한진중공업 조합원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신동준 |
“저에게는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꿈이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지만 걱정된다며 죽을 쒀서 가져오시는 수녀님도 만나고 싶고, 얼굴도 모르지만 크레인 아래를 지키고 있는 초선 대의원, 촛불 집회에 찾아오는 18살 소녀도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술만 먹으면 우는, 김주익-곽재규 두 이름을 평생 낙인처럼 달고 살 우리 조합원들이 아픔 없이 정리해고 불안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곳에 올라와서 한 시간 씩 꼭 운동을 합니다. 여기서 걸어내려가는 법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잠그고 올라온 문이지만 제 힘으로는 저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저는 걸어내려가는 법을 잊지 않을테니, 여러분은 문을 여는 방법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이제는 이기는 싸움 좀 해봅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이름을 걸고 부끄럽지 않게 싸워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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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6일 한진중공업 한 조합원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농성중인 김진숙 조합원에게 식량을 올려준 뒤 신호를 보내고 있다. 신동준 |
전화로 연결된 김진숙 지도위원은 조합원들에게 흩어지지 말라고, 꼭 뭉쳐서 승리하자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숨죽인 채 김 지도위원의 발언을 듣던 노동자들 모두 힘찬 투쟁으로 화답했다.
회사는 정리해고 방침을 고수하며 1월31일까지 희망퇴직 기간을 연장하고 조합원들 집으로 개별 통지서를 보내고 전화 연락을 취하며 희망퇴직을 종용하고 있다. 회사는 31일까지 희망퇴직 시 받는 돈과 2월 14일 정리해고 될 경우 받는 돈이 5천 만원 정도 차이난다며 조합원들을 흔들고 있다. 희망퇴직을 하면 자녀 학자금을 3년 동안 보장해주겠다는 얘기까지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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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6일 부산역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분쇄 금속노조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신동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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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6일 부산역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분쇄 금속노조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동준 |
하지만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은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흔들림 없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2백9십 명과, 정리해고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고 교육 대상자로 분류된 조합원들까지 8백 여 명은 서로 구분 없이 공장 철야농성 한 달여 째, 부산시청과 한나라당사 앞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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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6일 부산역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분쇄 금속노조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마친 노동자, 시민들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신동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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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6일 부산역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분쇄 금속노조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마치고 행진에 나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부산대교를 건너 영도로 들어서고 있다. 신동준 |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은 26일 부산역 광장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열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을 실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전국의 금속노조 확대간부와 조합원, 민주노총 조합원과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2천 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부산역 광장에서 1차 집회를 열고 한진중공업까지 행진을 해 85호 크레인 아래서 마무리 집회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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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6일 부산역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분쇄 금속노조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마치고 행진에 나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영도조선소로 들어서고 있다. 신동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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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6일 부산역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분쇄 금속노조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마치고 행진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도착한 노동자, 시민들이 85호 크레인 밑에서 정리집회를 하고 있다. 신동준 |
마무리 집회에서 문철상 노조 부산양산지부장은 “회사는 정리해고 명단을 통보하면서 조합원들 사이를 가르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산자와 죽은자가 분열되는 상황을 수없이 봤다. 하지만 2003년, 2009년 2010년 정리해고 투쟁을 흔들림 없이 해온 한진 조합원들은 흩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김진숙 동지를 살리기 위해 조합원들이 하나로 뭉치고 있다”고 투쟁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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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6일 부산역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분쇄 금속노조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마치고 행진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도착한 노동자, 시민들이 85호 크레인 밑에서 정리집회를 하고 있다. 신동준 |
채길용 한진중공업지회장도 “2010년 2월 이미 한번 정리해고 투쟁에서 승리했던 우리다. 이번 싸움 또 한번 승리로 만들겠다”며 투쟁의 결의를 밝혔다.
"총 맞았다고 나갈 수는 없지"
- 공장 철야농성 한 달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85호 크레인 아래를 밤새 지키는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있다. 장작불을 피워놓고 둘러 앉아 고구마도 구워 먹고 찹쌀떡도 나눠 먹으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다.
26일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마치고 조합원들이 다시 장작불 앞으로 모였다. 한진중공업에서는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이들에게 ‘총 맞았다’는 표현을 쓴다. 이날 만난 김 조합원은 한진중공업에서 네번 째 총을 맞았다. 이번 정리해고 대상자에도 포함됐다. 20년 넘게 일해 온 회사는 줄기차게 자신을 내쫓으려고 하는데 용케 버티고 있다며 웃는다.
“울산에서 쫓겨 온 지 다섯 달밖에 안됐구만 또 총을 쏴버렸어. 부산 가면 살 수 있다고 하더니만...” 김 조합원은 회사가 울산공장을 폐쇄할 당시 부산공장으로 전환배치됐다. 그는 “그때도 수주 물량이 2척 있는데도 그거 다 딴 데로 넘겨 버리고 공장 문 닫는다면서 우릴 쫓아낸거지. 노조 깃발 내리고 부산으로 오면서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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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6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농성중인 85호 크레인 밑에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농성장을 지키기 위해 모여 있다. 신동준 |
우수상은 못 줄 망정 네 번째 총 쏜 회사
김 조합원은 지금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정리해고 대상자가 될 당시 회사가 조합원마다 매긴 점수에서 백 점 만점에 76점을 받았다. 근태, 업무 수행 능력 등을 평가한 점수다.
“나는 근태도 만점이고 학력이며 뭐며 거의 다 만점 받았어요. 그런데 20년 넘게 땜쟁이 한 사람을 업무 수행 능력에서 절반 밖에 점수를 안주더라고. 그래도 76점이면 우수상은 줘야 할 점순데 나가라니까 이해가 되냔 말이지” 한참 일해야 할 젊은 조합원들, 노조 활동 열심히 한 사람, 회사가 자체적으로 평가한 점수가 높은 사람까지 아무 기준도 없이 나가라고만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주변에 앉은 박 조합원은 이번에 총을 맞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 째 철야 농성을 같이 하고 있다. “뭐 이번에 잘 넘어가도 3년 정도 있으면 또 총 쏘지 않겠나. 먼저 가나 나중에 가나 뿐이지” 이번에 누가 대상자로 선정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조합원들은 몇 년 째 ‘회사가 어렵다, 정리해고 해야 한다’는 상황에서 이대로라면 모두 해고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래서 크레인 보고 있으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해. 사실 우리 회사가 일거리 없는 것도 아니고 매 년 흑자도 엄청 내고 있는데 우리만 나가라고 하니 배신당하는 기분 들지” 박 조합원은 회사의 행태에 분노를 토하며 고개를 절로 흔든다.
회사에서 내쫓더니 하청으로 들어와 일하랍니다
회사는 조합원들 스스로 공장을 떠나라고 등 떠밀기에 혈안이 돼있다. 그 과정에서 가정불화도 생기고 평생 같이 일하던 동료들끼리 얼굴 붉히는 상황도 생기고 있다. “회사가 지금 나가야 퇴직금이랑 위로금해서 돈 더 받을 수 있다고 집으로 통지서를 보내니까 그거 본 부인들이 난리가 났지” 김 조합원도 집으로 통지서가 왔고 그걸 본 부인과 다툼도 있었다고 말한다. 몸이 아픈 부모님이 있거나 부인의 성화를 못 이긴 조합원들은 울면서 희망퇴직서를 쓰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조합원들은 회사가 희망퇴직서를 쓰는 조합원에게 그 자리에서 다음날 부터 회사에 나와 일 하라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고 전한다. 당장 배를 만들기는 해야 하니 하청으로 들어와 일을 하라는 것. 어제 희망퇴직서를 쓴 조합원이 다음 날 공구를 들고 출근하다가 정문을 지키고 있던 농성 조합원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형님, 이러시면 안되죠. 돌아가세요”라는 조합원들의 말에 일하러 왔던 조합원은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네 번째 총을 맞은 김 조합원은 4전5기의 심정으로 다시 일터로 돌아갈 꿈을 꾸고 있다. 지금 85호 크레인 아래, 정문, 부산 시청과 한나라당사 앞을 지키고 있는 조합원들의 마음도 모두 한결 같다. 하지만 김 조합원은 “지금 상황이 좀 답답하다”는 속내도 드러냈다. “정리해고 당한 회사 치고 너무 조용한거 아닌가 싶어. 현수막도 막 걸고 회사 본관에 진도 치고 빨리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길을 찾아야지. 상급단체도 한 번 많이 와주는 것도 좋지만 금속노조가 할 수 있는 역할도 해야 하고 조합원들 현장 목소리가 어떤지도 많이 들으면서 싸움을 해야 한다고.”
96년만의 한파라는 부산 날씨는 차갑기만 하다. 한진중공업에 부는 바닷바람도 몸을 웅크리게 한다. 한진중공업 푸른 작업복을 입고 공장 곳곳 불을 피운 채 앉아있는 이들에게도 어느 때보다 극심한 추위일 것이다. 하지만 나가란다고 그냥 떠날 수는 없다. 85호 크레인이 승리의 상징이 되고 총 맞은 사람, 안 맞은 사람 구분 없이 뚝딱 뚝딱 배 만들러 가기 위해 뭉치는 것 만이 살 길이다. 오늘도 한진중공업에는 투쟁의 불빛이 환하게 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