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뒤 노후소득 보장장치 마련을 위한 금속노조 차원의 대응이 시급하다. 2011년부터 기존 퇴직금제도에서 퇴직연금제도로 급속하게 바뀔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 이미 현대차지부는 지난 9일 “2011년 1월부터 퇴직연금제로 운영하되 2013년 이전까지 확정급여형으로 한다”고 노사 합의했다. 지부는 퇴직연금제 운영규약을 노사 간에 마련하고 이를 운영 및 관리할 금융사업자 선정만 앞두고 있다. 기아차지부도 27일부터 30일까지 지부대의원을 대상으로 퇴직연금제도 관련 설명회를 갖고 신속하게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경남 창원의 A사의 경우는 금속노조 조합원이 사업장 ‘종업원’의 과반수가 안 된다는 이유로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퇴직연금제도 전환 동의서명을 밀어부쳐 물의를 빚기도 했다.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의 동의로 기존 퇴직금제도와 퇴직연금제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돼 있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을 악용하고 있는 셈. 문상환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회사에서 퇴직연금제도 전환을 위해 협의를 요청해와 어떻게 대응해야 하냐는 전화문의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고 말한다.
2011년 퇴직연금제도 급속도입 전망
2011년 새해부터 퇴직보험제도가 없어진다. 노사합의에 따른 단체협약에 따라 기존 퇴직금 제도를 그대로 유지해도 되지만 퇴직적립금에 ‘사고’가 났을 때에 대비한 보험 보장한도도 현 30%에서 매해 5%씩 줄어 2016년에 없어진다. 우환섭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대부분 기업이 퇴직금을 장부상에만 기재해놓고 있다가 회사가 자본금이 부족해 노동자가 퇴직금을 받지 못할 위험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기존 퇴직금제도가 노동자 노후에 반드시 유리한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또한 이미 많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퇴직금 중간정산을 해 퇴직 뒤 노년대비가 어려운 상태로 내몰려 있다는 게 우 국장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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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 한 연구소가 노조 대표자와 증권사 관계자 등 200여명을 모아 퇴직연금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
노조가 지난 9월 퇴직연금 관련해 소속 사업장 32곳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다섯 곳을 뺀 27곳의 노동자 3분의 1이 퇴직금 중간정산으로 돈을 빼갔다. 이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15년이다. 특히 개인 저축을 전혀 못하고 있는 사람을 포함해 생활비의 5% 이하 수준만 저축하는 노동자가 절반을 넘고 있어 퇴직 뒤 노후 소득원이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기도 하다. 이에 당시 실태조사 결과 3백인 미만 사업장의 절반이 퇴직연금도입에 찬성 의사를 밝혔고, 특히 1백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무려 75%가 퇴직연금에 가입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에 문상환 노조 정책실장은 “제대로 알고 금속노조 차원에서 통일적으로 대응만 할 수 있다면 퇴직연금제도는 노동자의 노후대비를 위해 활용할 만하다”고 강조한다.
“퇴직금제도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2005년 12월부터 시행된 퇴직연금제도에는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확정급여형이란 퇴직 뒤 노동자가 받을 돈이 ‘퇴직전 평균임금×근로연수’로 정해져 있는 것으로 연금적립금 운용부담을 사용자가 한다. 반면 확정기여형이란 사용자가 내는 돈으로 노동자가 그 적립금을 주식 투자하듯이 직접 운용해 돈을 불릴 수도 까먹을 수도 있는 제도다. 직장을 옮기더라도 연속성을 갖는 ‘개인퇴직계좌’를 만들 수도 있다. 현행 퇴직금제도를 퇴직연금으로 바꿀 경우 기존 퇴직적립금은 노사합의에 따라 △퇴직연금으로 소급해 편입 △퇴직금 중간정산 △이후 퇴직시 일시금으로 지급 등을 정하면 된다.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10년 뒤, 그리고 55세 이상부터 일시금 또는 연금으로 돈을 매달 탈 수 있다. 연금을 받는 기간은 노사가 퇴직연금규약으로 정하면 된다.
이처럼 퇴직연금제도는 국민연금, 개인연금과 함께 법적으로 3중 노후소득 보장 장치다. 문 실장은 “잦은 이직과 불안정한 고용, 그리고 퇴직금 중간정산제 등으로 노후대비 취지가 무색해져 있는 현행 퇴직금제도보다 법으로 강제돼 있는 퇴직금연제도는 잘만 활용하고 손질하면 의미가 크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지금껏 기존 퇴직금제도를 고수한 채 퇴직연금제도 전환을 꺼려왔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문 실장은 “노동자의 노후자금이 재벌사 소속 금융 및 보험사를 살찌우고 그 돈이 투기 목적으로 투자되는 문제 때문에 노동조합 쪽에서 퇴직연금제도 자체를 반대해왔던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중소기업 75%가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받는 조건에서 퇴직연금제도는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선택이라기보다 금융기관의 압력에 따른 결과라는 점도 노동자들이 ‘불신’하는 대목.
노동자들의 자발적 선택일까?
금속노조는 오래전부터 산별연금체제 도입을 대안으로 주장해왔다. 이에 금속 노사는 올 중앙교섭에서 금속노사공동위원회에 퇴직연금소위원회를 설치해 산별연금 도입을 위한 법률적 검토 및 도입 방안을 논의키로 합의했다. 산별연금제도란 금속노조와 사용자단체가 하나의 금융기관에게 퇴직연금을 맡기기로 계약하거나 기금 및 재단을 함께 만들어 퇴직연금을 공동 관리 운영케 한다는 것. 이렇게만 되면 사용자 입장에서도 따로따로 퇴직연금에 가입해 운용할 경우 발생하는 ‘운용수수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4~5만 명만 한꺼번에 가입해도 그 돈은 수조원에 달하며 15만 명으로 따지면 수십 조 원으로 그 기금운용 수익금으로 다양한 사회사업을 노사 공동으로 운용할 수도 있다. 연금 가입 노동자들에게 세제혜택과 대출금리 우대 등 다양한 혜택 제공 설계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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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 1일 열린 2010년 중앙교섭 조인식. 이날 금속 노사는 금속노사공동위원회에 퇴직연금소위원회를 설치해 산별연금 도입을 위한 법률적 검토 및 도입 방안을 공동 논의키로 합의 서명했다 |
하지만 현행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은 개별사업장의 퇴직연금계약만 허용하고 있고 산별노조와 사용자단체 차원의 집단적 계약은 효력이 없다. 아울러 노사가 공동으로 기금이나 재단을 만드는 것도 법적인 효력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수’는 과연 무엇일까? 특히 노동자의 노후안정성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면서도 산별연금제도의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산별연금 도입 노사공동 논의 눈길
이와 관련해 노조가 지난 22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산별연금제도 도입을 위한 노조의 기본 방안을 방침으로 마련했다. 그 방침에 따르면 노조는 올 중앙교섭 합의사항인 노사공동 퇴직연금소위원회를 최대한 집중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노조는 금속노조 노사공동 퇴직연금소위원회에서 모범 연금규약을 작성하고 공개입찰 방식을 통해 퇴직연금 운용 및 관리 사업자를 선정한 뒤 각 사업장마다 그를 토대로 노사 연금규약 작성 및 선정된 사업자와 계약케 한다는 것. 이에 대해 김연홍 노조 사무차장은 “산별연금제가 도입될 수 있는 법제도 개선을 위해 노사가 공동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강제하고 제도개선이 완료되면 산별연금제도로 쉽게 전환할 수 있게끔 단계적 전략을 펼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10일 올 중앙교섭 합의사항에 따라 금속노사공동위원회 상견례가 개최됐다. 2011년 새해부터 노사 간에는 퇴직연금과 관련한 협의가 진행할 예정이다. 노조는 22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산별연금 소위원회 논의 진행에 따른 노조의 단계별 방침도 추후 마련키로 의견을 모았다. 회사에 ‘장부상’ 쌓아 놨던 퇴직금을 신뢰성 높은 곳에 맡겨 노후를 보장하면서도 ‘이직’에 따른 연속성도 보장받고 노조의 개입도 키우는 연금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이는 노사합의에 따른 단체협약에 못을 박아야 하는 만큼 올 단체협약 갱신 요구안 마련과 직결된다. 요구안 확정을 위한 2월 28일 임시대의원대회 때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 본격적인 퇴직연금시대를 맞이하는 노조의 대응은 이제 피해갈 수 있는 주제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