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기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21일 정기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0년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 전국 성인남녀 1천 명에게 물어본 결과 '천안함 침몰사건'이 37.6%, '연평도 포격사건'이 34.8%로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이 두 사건이 유독 사람들 기억 속에 강렬히 남아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 두 사건은 국민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미증유의 사건이었으며,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되지 않는 이상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왔던 남북관계는 갈수록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한국전쟁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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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 전국 성인남녀 1천 명에게 물어본 결과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사건이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
연평도 포격이 있은 다음 올 초부터 계속 온다온다 하던 미 항공모함이 기어이 서해를 다녀갔다. 그 틈을 타 3일 한미 FTA 재협상이 타결됐다.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던 자동차 부문에서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협상이 끝났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이번 협상에 대해 “오바마의 승리로 간주해도 좋을 만큼 미국에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협상 결과”라고 보도했다. 반면 한미FTA 협상대표 김종훈은 “이런 결과를 갖고 와 대단히 죄송하다”고 했으며 “경제적으로 양보해야 하는 규모가 더 커졌다”는 홍정욱 의원의 지적에 대해서도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인정했다. 한 언론은 “비싼 미 항공모함 출동료를 치렀다”고 조소했다.
2010년 기억에 남는 두 사건
또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한나라당은 새해 예산안을 속전속결로 날치기 처리했다. 대통령의 ‘형님’인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에 막대한 예산을 배정하고, 대통령 영부인이 추진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뉴욕 고급 한식당 지원을 위한 예산을 배정했다. 날치기 통과돼 증액된 예산 4천 6백 13억 원 가운데 영남에 배정된 예산이 3천 84억 원인 반면, 호남은 2건 55억 원, 충청은 1건 5억 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비난하는 민주당에 대해 한나라당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지역구 예산을 상당히 챙겼다”고 응수해 예산증액이 결국 지역구 의원들의 자기 지역 챙기기였다는 내막이 본의 아니게 폭로됐다.
이것이 한편에서는 한반도 긴장고조와 충돌로 인해 군인과 민간인이 죽어나가는 가운데 벌어진 풍경들이다. ‘전쟁위기’와 ‘안보위협’의 이면에 국익을 팔아먹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만 챙기는 ‘안보장사꾼’들이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과거 역대 정권들은 정권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북의 위협’, ‘국가안보 위기’를 이용하여 탈출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올 6월 2일 지방선거에서도 정부와 여당은 천안함 효과의 극대화를 노렸으나 실패했다. 과연 ‘안보위기’, ‘북의 위협’, ‘전쟁위험’은 국민 눈을 가리고 보수정권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보수정권 위기탈출 가능할까?
지난 12월 1일 <폴리뉴스>가 여론조사기관 <한백리서치>에 의뢰해 총리실 불법사찰 재수사 논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었기에 재수사해야 한다”에 찬성하는 의견이 68.1%로 나타났다. “검찰수사가 이미 끝난 사안이기에 재수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23.2%에 불과했다.
지난 13일 <한겨레>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나라당의 내년 예산안 강행처리에 대해 “잘못한 일이었다”는 답이 59.2%에 달했다. 한나라당이 UAE 특전사 파병안과 4대강 관련 친수법을 함께 단독처리한 데 대해서도 60.8%가 “잘못한 일”이라고 질타했다. 날치기 처리과정에 발생한 폭력사태의 책임소재에 대해서도 50.2%가 “여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또 13일 <내일신문>이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예산안 강행처리 배후에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 작용했고 한나라당은 거수기 역할만 했다는 지적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60.3%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국회 폭력 책임’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이라는 응답이 41.6%로 ‘민주당 책임’이라는 응답 22.1%보다 배 가까이 많았다. 이번 예산이 ‘실세 정치인을 위한 예산이었다’는 물음에도 63.6%가 ‘동의한다’고 답해, ‘동의하지 않는다’ 22.7%보다 월등하게 높았다. 한미FTA 재협상에 대해서도 ‘미국에 유리한 굴욕적 협상’이라는 의견이 49.3%로 과반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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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당은 새해 예산안을 속전속결로 날치기 처리했다. 군인과 민간인이 죽어나가는 가운데 벌어진 풍경이었다 |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더 이상 ‘북의 위협’이나 ‘안보위기’따위가 보수정권을 위기로부터 구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변했다. 보수진영도 사실을 깨닫고 당황해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2월 21일자 『양상훈 칼럼』에서 “북이 아니라 남이 체제교체 될 판”이라며 비명을 질렀다.
“북이 아니라 남이 체제교체될 판”
“북한이 어뢰로 천안함을 공격한 것은 과거라면 보수정당의 득표에 유리한 사건이었다. 국민이 안보 불안을 느끼면 보수당을 지지한다는 것이 그때까지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대북 심리전 재개를 선언하고 북한이 확성기를 타격하겠다고 하자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막연한 안보 불안이 아닌 진짜 전쟁 불안을 느꼈다. 사병들이 집에 전화를 걸어 전쟁 불안과 정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들이 투표장에 대거 나타났다.”
“지금 주식 투자하는 사람이 4백만 명이다. 그 가족까지 더하면 1천만 명이 넘는다. 그들은 큰일 터지면 먼저 주식시장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주식 투자자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불안’이다. 증권회사 사람 중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 아니길 바라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모두 그런 심리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보수당 지지가 많다는 것도 상식이다. 그러나 이들도 자신들의 안온한 삶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눈앞의 진짜 불안 앞에서는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2010년 겨울의 전쟁 공포는 남북대결을 격화시키고, 이를 통해 정치적 돌파구를 찾으려는 수구냉전세력들에게 “세상이 변했다, 국민들이 바뀌었다,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진정한 공포를 맛보게 해주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천안함 효과를 극대화하려했던 여당은 선거에서 참패했다. MB정부와 여당이 연평도 사건의 충격을 좀 더 연장시키고자 지금처럼 계속 북을 자극하고,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다면 국민 여론은 냉소와 외면을 넘어 분노와 심판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조선일보>의 불길한 예언대로 국민이 “정권을 교체하자”고 나설 것이다.
김용현 / 사회동향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