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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숙원과제 '인간답게 좀 살자'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1-01-03 (월) 13:36 조회 : 2550

낮에 일하고 밤에 쉬는 게 불가능한 꿈일까. OECD 가입국 중 1위를 차지하는 최장노동시간을 줄일 수는 없을까. 근무형태를 바꿔보자고 제기해 온 지 12년. 현대차 노사는 올 임단협에서 “2011년 6월까지 주간연속 2교대제도 시행을 위한 세부방안을 마련”키로 합의했다.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의 안재원 상임연구위원은 “생산시스템과 임금체계 변경 등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예상한다. 안 연구위원은 부품사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에도 영향이 크다고 덧붙인다. 이 문제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금속노조 전체의 문제가 됐다.

근무형태변경 문제는 지난 IMF 시기 회사의 정리해고 위협에 대응해 현대차노조가 처음 제기했다. 노조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논리로 맞섰다. 당시 노조 주장이었던 △심야노동 철폐 △노동시간단축 △시급제의 월급제 전환 등은 조합원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 뒤 2005년 현대기아차 노사는 2009년부터 현재의 주야맞교대를 주간연속2교대제로 전환키로 합의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현대차지부장이 중도 사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무엇이 꼬여있는 것일까?

2011년 6월까지 세부방안 마련

하영철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사측이 의지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행 주야 10시간 맞교대를 8시간씩의 주간 2교대 근무로 바꿀 경우 생산이 80%로 줄게 되는 게 당연한 이치다. 회사로서는 생산 100%를 맞추기 위해 설비를 늘리고 인력도 채용해야 한다. 이 문제는 노동자들의 금전적 이해관계와도 직결된다. 10시간에서 8시간으로 일을 덜 할 경우 ‘시급제’ 체제하에서 손에 쥐는 임금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이를 막기 위해 노조가 제기한 것이 월급제로 바꾸라는 것. 결국 이 모든 게 회사의 추가 비용 부담을 요구하는 셈이니 회사가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 현대차 노사는 올 임단협에서 “2011년 6월까지 주간연속 2교대제도 시행을 위한 세부방안을 마련”키로 합의했다.

물론 회사의 추가비용 부담을 줄이게 하는 방법은 있다. 80%만 일하더라도 100%의 물량을 뽑아내도록 생산속도를 높이는 것을 허락하면 된다. 단순계산으로도 기존보다 생산속도를 1.25배 높이면 주간 8시간 2교대근무에도 기존 생산 물량을 소화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노조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안이다. 노동강도 강화는 노동자의 건강권 하락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틈새에서 회사는 수년간 버티기로 일관했다.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의 이상호 상임연구위원은 “회사가 노동자에게 노동강도 강화나 임금 하락이 싫다면 근무형태 변경을 포기하라고 강요해왔던 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임금 줄이거나 노동강도 높이거나?

이런 문제는 상대적으로 지불능력이 딸리는 중소기업으로 내려갈수록 더 크다. 때문에 근무형태변경 추진을 합의해 놓고 있는 대부분의 부품사의 경우도 원청회사인 현대기아차 시행 시점 때 본격 추진해보기로 합의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형국. 2010년 말 현재 현대로템, 현대모비스 등 부품사 지회 16곳 정도만 사업장 차원에서 이같은 합의를 도출해 놓은 상태로 근무형태 변경을 둘러싼 발걸음이 더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근무형태 변경이 미뤄지는 책임이 오로지 회사 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 국장은 “이를 추진할 노조의 준비가 얼마나 돼 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임금체계를 개선하는 대목부터 문제다. 지난 9월 한 달 간 노조 소속 자동차 부품사 29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임금 중 기본급 비중은 평균 43.5%밖에 안됐다. 이에 85%의 응답자가 월급제 등 고정급제 도입이 근무형태변경의 우선 전제라고 꼽았다. 손에 쥐는 임금이 대폭 깎이는 것과 일을 덜 하는 것을 고스란히 바꿀 생각은 없다는 뜻. 아울러 문상환 노조 정책실장은 “현 시급제 체제에서 생산물량이 많아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 임금 수준이 높은 노동자와 정반대의 노동자간에 월급제를 바라보는 이해관계도 틀리다”고 말한다. 회사에 요구안으로 내밀 월급제를 어느 기준에 맞춰 설계할 것인지. 이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순전히 노동자 내부 문제로 치부된다.

발걸음이 더딘 또 다른 이유들

노동강도를 높이자는 회사 쪽 논리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 준비도 부족하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3년 이상 숙련자가 1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작업분량을 뜻하는 맨아워(M/H)다. 맨아워는 한 작업공정에 몇 사람이 필요한지와 콘베이어 속도를 얼마로 할지를 규정한다. 시급제 작업장에서는 이것이 노동자 고용과 임금이 되고 노동강도가 된다. 현재 한국 제조업의 맨아워는 회사가 제시한 수치를 놓고 작업장 소속 노동자들의 힘으로 조절된다. 노동자의 단결된 힘이 커서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떨어뜨려놓은 맨아워와 그렇지 못한 상태 모두를 반영한 노조의 기준마련은 가능할까? 이 역시 노동자 내부 문제인 것인양 왜곡된다.

   
▲ 자동차 컨베이어벨트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완성사와 부품사간의 이해관계도 크다. 가령 완성사 노동강도를 현행대로 유지한 채 10시간 주야맞교대에서 8시간 주간 2교대로 바꿔 생산을 80%만 할 경우 여기에 납품하는 부품사의 생산물량도 자동 80%로 줄게 된다. 하지만 부품사 노동자들은 물량이 줄 경우 고용이 불안해진다고 본능적으로 여긴다. 지난 9월 조사결과에 따르면 완성사 근무형태에 따라 물량에 영향받는다는 답변이 83%에 달했고 55%는 고용에도 영향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55%의 응답자는 부품사의 현 물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바람까지 표출했다. 하 국장은 “부품사의 경우 완성사와의 물량 및 납품단가 논의가 동반돼야 한다는 인식이 크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대공장과 중소공장 노동자 간의 갈등으로 비쳐진다.

물량=고용=임금이라는 등식

임금, 노동강도와 건강권, 그리고 원하청 간의 관계까지. 완성차와 부품사 노동자가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뭉쳐있는 금속노조가 풀어야 할 정책적 과제가 너무 많은 셈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24일 열린 근무형태변경추진팀 6차 회의 결과가 눈길을 끈다. 이날 회의에는 현대기아차와 GM대우차 및 부품사 노조 간부들이 모였다. 이날 회의 때 노조는 부품사 지회들을 묶는 별도 부품분과 회의를 가동키로 했다.

아울러 이날 회의 때 노조는 맨아워 산정체계를 마련하고 산별노조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현장에 제시하여 노동친화적인 맨아워 협상 체계를 지원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올 4월까지 집중적으로 펼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연구에는 △맨아워 관련 학문을 전공한 공학자 △체계의 변화가 현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사회학 전문가 △해외 작업현장 실사 및 교섭체계 등 분석가 등 외부 전문가가 함께 결합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3월부터 가동된 노조 산하 근무형태변경추진팀이 6차 회의에 와서야 정책사업의 사실상의 ‘첫삽’을 떴다. 하지만 부품사 노동자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구조가 겨우 만들어졌고 노동강도 완화와 건강권 보호논리를 위한 연구 사업에 이제서야 착수한 것일 뿐이다. 12년을 끌어온 이 문제를 두고 “2011년에도 안 되는구나”하는 의구심을 조합원들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시간이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2011년. 어지럽게 얽혀 있는 노동자 내부의 이해관계를 하나하나 풀어내는 정책적 비전 제시가 어느 해보다 절실해졌다.


☞특수문자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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