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위원장 박유기)에는 ‘산별중앙협약’이 있다. 이 협약은 금속노조와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아래 사용자협의회)가 8년간 벌여온 중앙교섭 결과를 △조합활동 △노동조건과 임금 △건강권 △고용안정 △비정규직 △경영참가 △금속노사공동위원회 등 모두 40여개 조항으로 정리해 놓은 단체협약이다. 노조는 매년 이 협약 갱신을 위해 사용자협의회와 중앙교섭을 펼친다. 노조의 이재인 단체교섭실장은 “이 협약은 올해 현재 사용자협의회에 가입해 있는 1백 7개 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큰 틀에서 정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한다. 그 성과와 한계는 무엇일까?
중앙교섭 최대성과로 금속산업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해 합의하고 있는 것을 꼽는다. 금속산업최저임금제도 도입은 지난 2004년부터였다. 이때부터 노조는 사용자와 70만6백원(2004년), 76만5천60원(2005년), 83만2천6백90원(2006년), 90만원(2007년), 95만원(2008년), 97만8천원(2009년) 등으로 각각 다음해 적용할 최저임금을 합의해왔다.
2004년 도입 산업최저임금제도 눈길
눈에 띄는 건 ‘적용범위’다. 노조는 2004년부터 최저임금 적용범위와 관련해 금속사업장에 고용된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를 포함시키기로 합의해왔다. 사용자협의회에 가입해 있는 1백 7개 사업장 속의 비조합원까지 이 합의내용에 적용받는 셈. 노조의 김연홍 사무차장은 “10% 수준의 조직률에 불과한 프랑스는 노사 간에 맺은 협약이 다른 미조직 노동자에게까지 적용되도록 법이 정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법체계가 아니다. 김 차장은 “우리나라 조건에서 협약의 적용을 미조직 노동자에게까지 부분적으로 넓히고 있는 금속산업최저임금제도는 모범적인 제도”라고 덧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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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교섭 최대성과로 금속산업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해 사내 비정규직 및 이주노동자까지 적용대상으로 합의하고 있는 것을 꼽는다. |
중앙교섭이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것을 짚어왔다는 평가도 있다. 2003년 1월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열사는 회사의 노조탄압 수단이던 손배가압류 문제를 폭로하면서 분신 자결했다. 그해 10월 한진중공업의 김주익 열사도 회사의 손배가압류 등의 문제를 언급하며 목을 매고 자결했다. 2003년에서 2004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당시 사회는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사용자의 손배가압류 문제가 이슈였다. 이와 관련해 노조는 2004년 중앙교섭에서 “사용자는 노조활동을 이유로 손배가압류를 하지 않는다”는 합의 문구를 받아냈다.
그 뿐이 아니다. 무분별한 해외공장 신설에 따른 산업공동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조는 2004년과 2005년, 대책마련 조항을 사용자들로 따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사용자단체 회원사는 해외공장 신설계획 수립 시 고용안정 및 노동조건 관한 사항에 대해 노조와 60일 전에 합의해야 한다. 아울러 국내 조합원 고용불안을 초래하는 해외공장 생산제품을 국내로 반입하여 행위도 억제해야 한다.
손배가압류 금지에 산업공동화 억제까지
노동조건과 직결된 제도개선에 대응하기 위한 합의들도 있었다. 주5일제 도입이 대표적이다. 2003년 노사는 중앙교섭에서 주5일제 도입에 전격 합의했다. 그해 8월 29일 국회에서 관련 법안 통과(찬성 141, 반대 57)에 앞서 중앙교섭 합의소식을 먼저 전파해 대세로 굳혔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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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조는 2004년 중앙교섭에서 “사용자는 노조활동을 이유로 손배가압류를 하지 않는다”는 합의 문구를 받아냈다. |
2009년 퇴직연금제도 시행을 앞두고 제도개선을 정치권에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2005년. 당시 금속노조는 “현행 퇴직금 제도를 유지하며 노사합의 없이 이를 변경할 수 없다”는 합의를 하기도 했다. 올해는 특히 금속노사공동위원회에 퇴직연금소위원회를 설치해 산별연금 도입을 위한 법률적 검토 및 퇴직연금 도입 방안 등을 논의하기로 뜻을 모았다.
아울러 노조는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처우개선 문제를 중앙교섭 첫해인 2003년부터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그에 따라 사용자들은 비정규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노조가입을 이유로 불이익 처분을 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이들은 협약에 따라 불법파견 인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불법파견 확인 시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며 임시직도 3개월 이상 쓰지 못한다.
주5일제 선도와 불법파견 정규직화
하지만 이같이 유의미한 중앙교섭이 언제부터인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현재의 중앙교섭이 가지는 한계가 크기 때문. 현재 사용자협의회에는 현대기아차로 대표되는 자동차완성사가 가입해 있지 않다. 두산 및 S&T그룹사 등 주요 재벌사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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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3년 노사는 중앙교섭에서 주5일제 도입에 전격 합의했다. 그해 8월 29일 국회에서 관련 법안 통과에 앞서 중앙교섭 합의소식을 먼저 전파해 대세로 굳혔다. |
“이러다 보니 중앙교섭에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노조의 하영철 정책국장의 설명이다.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불능력이 낮은 중소기업에서 최저임금을 높이려면 그 기업이 생산물을 납품하는 대기업으로부터 납품단가를 제대로 받아 지불능력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이 이것을 조율하고 협의할 대표적 창구인 중앙교섭 참석 자체를 거부하고 있으니 중앙교섭에서의 최저임금 인상폭 합의는 그 혜택범위가 높지 않은 셈.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다. “불법파견 확인 시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산별중앙협약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는 2004년 12월 16일 노동부가 내린 불법파견 판정에도 정규직 전환을 여태 거부하고 있다. 규모로 보나 사회적 파급력으로 보나 산별중앙협약의 영향력은 크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놈의 대기업 때문에
2008년 중앙교섭에서 합의한 교대제 개선 관련 합의도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는 평가도 있다. 당시 금속노조는 사용자협의회와 “노동시간단축 및 교대제 개선을 위한 대책마련을 위해 교대제개선 실행위원회를 운영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이 위원회 운영은 흐지부지됐다. 이와 관련해 하 국장은 “물량납품의 측면에서 대기업의 근무형태에 중소기업들이 좌우되고 있는 마당에 중소기업들끼리 될 일이 아니”라고 토로한다. 이 문제도 결국 대기업과 함께 조율하고 협의하는 것을 비켜갈 수 없는 문제라는 뜻.
이렇게 대기업의 중앙교섭 참가문제는 한국 노사관계의 오랜 과제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은 사용자가 사용자단체에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든가, 노조의 중앙교섭에 꼭 임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결국 노조가 힘으로 대기업 사용자를 교섭석상에 강제로 앉히는 수밖에 없는 노릇인데, 이게 중소기업에서는 통했다.
노조의 문상환 정책실장은 “중소기업의 쟁의행위는 솔직히 말해 대기업으로 가는 납품선을 끊으면서 사용자를 압박하는 것이라 사용자의 사용자협의회 가입 강제를 위한 전술운용이 상대적으로 쉽다”고 털어놓는다. 실제 사용자협의회 회원사 중 가장 큰 곳은 2천5백여 조합원 규모의 만도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중소기업에 부품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대기업은 다르다. 공계진 노조 정책연구원장은 “지불능력이 높은 대기업 단체협약은 산별중앙협약보다 문구수위가 대부분 더 높다”며 “중앙교섭에 대기업 사용자가 참석하면 조합원에게 더 많은 혜택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는 상태에서 대기업 조합원이 단지 그 문제만으로 싸움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중앙교섭은 금속노조 17%만의 교섭?
심지어 하 정책국장은 “대기업이 중앙교섭에 어떠한 형태라도 나오는 순간 원하청간의 불공정거래 문제가 수면위에 올라 올텐데 어느 대기업이든 무슨 수를 써서든 저항할 것”이라며 대기업과의 중앙교섭 성사가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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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만 명에 달하는 금속노조의 대표교섭이 조합원 17%만의 교섭일 뿐이며 사회적 영향력까지 줄어들었다는 일각의 평가가 거짓말은 아니다. |
이러다보니 현재 중앙교섭은 1백 7곳 2만 5천 여 명과 ‘프러스 알파’를 위한 교섭으로 그 의미가 축소돼 있다. 15만 명에 달하는 금속노조의 대표교섭이 조합원 17%만의 교섭일 뿐이며 사회적 영향력까지 줄어들었다는 일각의 평가가 거짓말은 아니다.
하지만 김 사무차장은 “올해 중앙교섭의 영향력을 새삼 확인한 셈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노동기본권 사수라는 단일한 목표로 벌인 6월 9일 파업 때 ‘중앙교섭 대오’ 2만 5천여 명의 파업으로 그 문제를 세상에 알렸고 그로 인해 자동차 완성차 라인 일부도 가동을 멈추게 했다. 김 차장은 “이런 전술운용이 가능한 중앙교섭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중앙교섭을 다시 강화하기 위한 재구성이 절실한 때”라고 강조한다.
지난 19일 8년차 중앙교섭이 사실상 끝났다. 이제 금속노조 중앙교섭을 비롯한 교섭구조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지 숙제를 풀어야 할 때다. 하지만 만만치 않다. 왜냐하면 이는 지난 2007년 15만 명으로 늘어난 한국의 대표적 산별노조가 4년째 거듭하고 있는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