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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확대 여론조장에 시간끌기?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0-10-22 (금) 15:31 조회 : 2241

▲ 지난달 17일 이경훈 현대차지부장과 사측 관계자가 이미경,홍희덕 의원에게 불법파견 실태를 설명하고 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고 했다. 7월 22일 대법원 판결이 있은 지 석 달,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정규직화와 파견제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오히려 정권과 자본은 이번 기회를 통해 모든 산업에 비정규직을 늘리겠다고 나섰다. 지난 1일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 주최로 열린 사내하도급 실태와 국가경쟁력 제고 정책토론회, 이날 참가자들은 이번 판결로 인한 기업의 비용 부담의 부당성과 파견법 전면 확대, 그리고 대법 판결에 대한 시간끌기 대응을 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사내하청, 불법파견 너무 많아 돈 많이 든다?

먼저 토론회 참가자들은 앞다퉈 대법원 판결이 가져올 기업의 비용 부담을 토로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들기 때문에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판결은 현대차 뿐 아니라 전 산업에 영향을 미쳐 그 부담이 더 클 것이라 진단했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막대한 비용 부담이 발생할 것이고, 인건비의 급격한 상승은 국내 생산기반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고용시장 또한 더욱 경직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호돈 현대차 부사장 또한 12일 대구부산노동청 국정감사에서 “비용 때문에 하청노동자를 썼던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금속노조 박정미 정책국장은 “전 산업적 인건비 비용 증가라는 것은 오히려 사내하청이 전 산업에 만연해있고, 기업이 불법적인 파견 또한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자본 스스로 인정한 꼴”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2008년 노동부가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2008년 사내하도급 현황’에 따르면 963개 사업장 노동자 169만 명 중 37만 명(21.9%)이 사내하도급인 상황이다. 현대차도 전체 노동자의 13.8%가 사내하청이고 이들과 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30% 이상이다. 결국 기업이 지금껏 비정규직 고용으로 인건비 절감과 매출액 상승을 누렸으면서도,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인건비가 증가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기업의 못된 심보일 뿐이다.

파견법 개정 = ‘합법’파견, 비정규직 대폭 늘리겠다?

토론회 참가자들의 뒤이은 주장은 인건비 상승과 고용 경직이 기업의 경쟁력을 하락시킨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 원인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규제가 강한 파견법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32개로 제한되어 있는 업종을 현실에 맞게 수정, 확대 ▲제조업 파견 허용 ▲사용기간 연장 허용 ▲불법파견 시 가해지는 직접고용의무 폐지 등으로 파견법을 개정해 비정규직을 확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새로운 기업 조직 혁신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며 “기아차 모닝처럼 일정한 공정 전체를 외주화하는 방안”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생산직 노동자가 100% 비정규직으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상시 해고가 만연한 동희오토를 혁신모델로 삼아 이러한 형태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독일의 폭스바겐과 일본의 도요타 등을 예로 들면서 세계적 기업과의 경쟁을 위해 파견근로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파견 확대가 추세고 이들 기업 또한 제조업을 포함한 대부분의 업종에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 도요타는 2004년 제조업에 파견이 허용되면서 2000년에 비해 2005년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약 25%가량 상승했다. 비정규직이 많은 기업과 비용 경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비정규직 고용 형태를 더욱 다양화하고 제조업 파견 또한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0년 3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도급, 외주, 아웃소싱 등을 제외하고도 전체 노동자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49.8%로 나타났다. 파견법 역시 1998년 제정 이후 2006년 말 26개 였던 허용대상업무를 32개로 확대했다. 2년 이상 고용이면 무조건 직접고용된 것으로 본다는 고용의제도 ‘고용의무를 지닌다’는 내용으로 개악되었다. 또한 모순적이지만 파견법 확대를 주장하는 남 교수가 제출한 자료에도 이미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율은 OECD 국가 중 3위를 차지할 만큼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10월14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불법파견 정규직화, 파견법 철폐 금속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심지어 이들이 근거로 삼고 있는 일본은 최근 ▲한시적 고용 금지 ▲26개 전문업종을 제외한 업무는 파견노동자 상시 고용 ▲제조업 파견 원칙적으로 금지 등을 핵심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파견법 개정에 나섰다. 일본은 99년 파견을 원칙적으로 자유화하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한 후 2002년 43만 명에서 2008년 140만 명으로 파견 노동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 결과 일본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임금격차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파견 노동을 확대해 제조업에서도 파견노동자를 합법적으로 쓰겠다는 자본의 속셈은 지난 12일 이명박 대통령이 확정, 발표한 ‘국가고용전략 2020’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정부의 고용전략 내용은 파견 허용 직종 조정과 사용기한 규제 완화, 단시간 근로 확대 등이다. 이 방안대로의 일자리 창출은 일자리의 수가 늘어나더라도 결국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채워질 것이 뻔 한 상황이다.

이에 노조 박정미 국장은 “이번 판결은 불안정한 노동을 확산시킨 파견법에서조차 최소한 규제하고 있는 제조업 불법파견을 인정한 것”이라며 “규제조항을 없애고 파견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파견법 자체를 없애고 불안정 노동을 없애는 방안이 필요한 때”라고 정부와 자본의 파견 확대 논리를 비판했다.

자본의 시간끌기, 떼쓴다고 될 일?

자본은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시간끌기로 대응하겠다는 전략 또한 뚜렷이 했다. 대법원 판결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파기환송심이 진행되는 동안 최대한 시간을 끌어 판결을 번복시키겠다는 것. 강호돈 부사장이 지난 12일 국정감사에서 “최종 판결이 났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불법파견 인정할 수 없다”며 시간끌기에 들어간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I&S법률사무소 조영길 변호사는 “새로운 증거에 의하여 새로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판결을 뒤집고 새로운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바로 현장에서 도급적 요소를 강화하고 파견적 요소를 최대한 감소, 배제시키는 것. 노동계와의 법적 분쟁에 있어서도 조급한 인정을 피하고 시간끌기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침이다. 조 변호사는 또한 대법원 판결이 미치는 영향력과 부작용에 대해서 충분히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기하기도 했다. 이것은 앞서 말한 기업의 비용 부담 증가와 기업 경쟁력 약화, 고용 감소 등을 여론화해 새로운 판결을 이끌어내는데 힘을 싣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 지난 1일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사내하도급 실태와 국가경쟁력 제고 정책토론회를 열어 기업의 비용 부담의 부당성과 파견법 전면 확대, 7.22 대법 판결에 대한 시간끌기 대응에 나섰다.
이러한 전략은 벌써부터 실행되고 있다. 최근 노동부의 불법파견 실태 현장 조사를 앞두고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작업 공간 사이에 칸막이를 설치하고 작업지시서를 하청업체 이름이 적힌 것으로 변경하는 등의 작업이 진행됐다. 이것은 이후 진행되는 현장검증 등을 통해 변경된 현장 상황을 근거로 해 자본이 파견이 아닌 도급이라고 주장할 것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자체를 뒤집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 법률원 김태욱 변호사는 “민사소송법 제436조에 의해 파기환송을 받은 원심 법원은 상고법원(대법원)이 파기 이유로 삼은 법률상 판단에 기속되는 것으로 항소심법원(고법)이 다른 판단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현대차 주장은 이미 대법원이 법률적 평가를 한 사실관계에 대한 다른 법률적 평가에 근거한 것일 뿐”이라며 “이것이 대법원 판결을 번복할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제 정부와 자본은 대법 판결 자체를 무력화하고 전체 산업에 비정규직을 확대시키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앞으로 노동계의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대한 강경 대응과 대법 판결이 부당하다는 여론전 또한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한국의 최고 법원이라는 대법원도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했다. 이제는 불법파견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파견법 폐지, 전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노동자들의 맞짱 투쟁이 필요한 때다.


☞특수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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