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주최로 산별노조 발전 전망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지난 2006년 통합 대의원대회를 거쳐 국내 최대 산별노조로 거듭난 금속노조에 대해 “교섭·조직화·지역사업 모두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형국”이라는 비관적 진단이 내려졌다.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원장 공계진)은 15일 오후 서울 정동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산별노조 방향과 전망 찾기’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금속노조가 87년 체제에서 유효했던 ‘전투적 조합주의’를 뛰어넘지도 못하고, 오히려 조합원들의 보수성을 강조하면서 전투성마저 잃어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투쟁해야 할 시점에 몸을 사리고, 뒤늦게 투쟁을 남발하면서 조직력을 약화시킨 책임이 지도부에 있다”는 날선 비판도 나왔다. “연맹체로의 회귀, 기업지부 내 금속노조 탈퇴여론 확산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우려도 빠지지 않았다.
“기업지부 지역재편, 만병통치약 아니다”
“강남 살던 사람이 가산동으로 이사간다고 해서 평소 안 나가던 반상회에 잘 나가겠습니까. 기업지부를 지역지부 소속으로 편제하더라도, 기업지부들은 자신들의 이해와 맞지 않다고 판단되면 지역사업에 동참하지 않을 겁니다.”
토론자로 나선 박병규 전 기아자동차지부 광주지회장의 말이다. 그는 “조직체계 때문에 조직 내부의 단결이 저해되는 것이 아니라, 대공장 정규직의 지탱해 주는 물적 토대를 넘어서는 가치나 비전·사업이 부재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속노조는 올해 안에 조직개편 논의를 마무리하고, 내년까지 기업지부의 지역지부 편제를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를 위해 ‘조직발전 특별위원회’를 가동 중이다. 하지만 조직체계의 변경을 통해 좀 더 완성된 형태의 산별노조로 가자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관련 논의는 결론 없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지부의 기득권 보전을 전제로 조직개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안 가려는 사람과 끌고 가려는 사람이 서로 고집만 부리고 있는 상황이에요. 서로 한발씩 양보해야죠. 기업지부들이 지역지부로 편제되더라도, 대표지회를 둬서 단체협약 등을 기존처럼 할 수 있게 풀어 줘야 합니다.”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차기 현대차지부 선거 상황을 예측해 보면, 민주파 후보의 분열 속에서 산별노조 탈퇴를 내건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며 “이 같은 예측은 완성차지부라면 어디든 해당되는 것이고, 이런 판국에 산별 완성은 허황된 구호에 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복수노조 코앞, 우물쭈물할 여유 없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중앙-지부-지회교섭’를 골자로 한 현재의 교섭체계에서 탈피해 업종별·대정부교섭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산별요구안이 나오면 조합원들은 ‘좋은 내용이지만 금속노조가 할 수 있나?’, ‘금속노조가 상대방을 나오게 할 힘이 있나?’ 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조합원들은 금속노조 조직력의 수준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요. 금속노조가 노-정교섭이나 노-경교섭을 끌어낼 능력이 없다는 것을 조합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이성재 전 GM대우차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금속노조가 완성된 산별노조의 상을 미리 그려 놓고 사업을 끼워맞추다 보니 다양한 교섭의 가능성이 차단돼 왔다는 지적이다. 이 전 위원장은 “산별노조를 완성하는 경로가 다양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다양한 교섭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며 “노조가 우물쭈물하다가는 복수노조 시행과 함께 참담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조운동의 전망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금속노조가 활동가와 간부들에게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등에 불을 끄는 식으로 현안투쟁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이다.
“노조 활동가들은 노조운동에 대한 전망을 잃어버렸습니다. 과거 대중의 투쟁력 폭발할 때는 의식적 무장이나 정책이 미흡하더라도 대중의 요구에 맞게 열심히 싸우면 됐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요.”
박준석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금속노조는 여전히 기존 전투적 조합주의 방식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노조운동의 위기상황과 대중의 보수화 흐름 속에서 금속노조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방향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은회 기자. 매일노동뉴스(labortoday.co.kr) 기사제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