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울산, 아산 등 세 곳의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이 10일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2010년 임금 및 단체협상’을 위한 공동교섭을 요구했다. 또 71개 하청업체들에게는 집단교섭을 요청하며 공동요구안을 발송했다.
그동안 대공장 비정규 노동자들은 임금 및 고용 등에 권한이 없는 ‘바지 사장’과 단체협상을 진행해오면서 한계에 부딪혀 왔다. 하청업체 노사가 별도 임금협상을 벌여도 원청업체의 도급비가 오르지 않으면 하청업체는 임금을 인상할 수 없었기 때문. 더욱이 부당노동행위를 밝히고 파업을 벌이면 업체 폐업 등이 자행돼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은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비정규 노동자의 현실은 ‘뭉쳐서 싸우기’ 더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졌고, 비정규 노동자 투쟁에 비정규 노동자가 직접 나서는 것은 일자리를 내놓고 싸워야 하는 힘든 고통이기도 했다. 지난 3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사태에 맞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투쟁을 벌인 것은 모범이었다. 이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특히 2008년 가을 경제위기 이후 △하청업체 폐업 △공정 축소 △공정변경 등으로 1천 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차 공장에서 쫒겨나간 상황은 이들의 공동투쟁에 절실함을 더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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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10일 전주, 울산, 아산공장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와 71개 협력업체에게 상대로 각각 ‘2010년 임금 및 단체협상’을 위한 공동교섭과 집단교섭을 요청하며 공동요구안을 발송했다. |
이 와중에 지난 3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관련 판결은 원청 교섭의무를 최초 시사했다. 지난 3월 25일 대법원은 “원청회사인 현대중공업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관계상의 제 이익이 실질적인 지배력 내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의 지위에 있으므로 부당노동행위의 주체 내지 단체교섭의무를 지는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고 판시했다. 즉 원청도 사내하청, 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조법상 사용자이므로 단체교섭 의무가 있고,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
원청 교섭의무 시사 대법판례
현대자동차 세 지역공장의 비정규 노동자들은 이날 “현대자동차에 4만5천여명의 정규직노동자와 1만여명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같은 라인에서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며 사내하청의 ‘진짜 사장님’은 현대자동차임을 주장했고 원청과의 공동교섭을 요구했다. 또 71개 사내하청 업체에 같은 날 공동요구안을 바탕으로 집단교섭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날 아침 10시 원청 공동교섭 상견례자리에 현대자동차 사용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71곳 하청업체 사장들 역시 교섭 상견례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는 공문을 통해 “현대중공업 판례는 알고 있지만 현대중공업과 우리는 사업체도 다르고 환경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71개 하청업체들 역시 ‘개별교섭으로 진행하자. 집단교섭은 어렵다’는 입장으로 응수했다.
이에 비정규 노동자들은 15일 아산공장을 교섭장소로 하여 2차 교섭을 요청했다. 6월 22일 경 중노위에 조정을 신청할 계획도 갖고 있다. 또 집단교섭에 임하지 않는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지노위에 조정신청을 넣고 파업권을 확보한다는 일정도 밝히고 있다. 즉 원청과의 공동교섭과 하청업체와의 집단교섭을 동시에 쟁취한다는 방침. 더불어 주1회 공동선전물을 발행해 비정규 조합원들에게 홍보하고 공동 교섭 보고대회를 계획돼 있다. 공동보고대회를 위해 세곳 공장의 비정규지회가 함께 꾸리 공동교섭단이 직접 순회키로 했다.
현대차 울산비정규지회 이상수 지회장은 “그동안 비정규직의 안일한 대응으로 고용불안 뿐아니라 조직력 확대도 부진한 상황”이라며 “이번 교섭투쟁을 비정규노동자들의 주체적인 싸움으로 가져가 현장조합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고, 정리해고 철회와 고용안정을 쟁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6월 22일에 공동 조정신청 계획
이에 앞서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지회 세곳은 지난달 29일 통합대의원회의를 개최하고 △조합활동 △고용안정 △노동시간 △산업안전보건 △복지후생 등 현대자동차 원청사가 사용자로서의 지위에 있는 80개 조항의 요구를 확정했다. 이들은 “회사 시설물 이용과 후생복지시설의 사용, 그리고 노동시간과 휴게시간 및 산업안전보건 등은 하청업체 바지사장은 털끝만큼의 권한이 없는 사항이고, 현대차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밖에 없다”며 원청과의 교섭이 정당하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들의 공동요구안에는 사내하청업체에 대한 폐업, 공정축소, 공정변경 등 고용문제 발생 시 고용을 승계할 것이 포함돼 있다. 사내하청업체와 노동조합이 자율적으로 맺은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인상을 합의했을 때 이를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및 상여금, 성과급이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동일하게 지급될 수 있도록 도급단가에 반영할 것도 요구했다. 이밖에 △임금 130,730원 인상 △차별시정수당 100,000원 △정기상여금 150% 인상 △2∼3차 사내하청 노동자 동일 적용 △해고자 복직 △고용안정협약 체결 등이 공동요구안에 담겨 있다.
금속노조 박점규 단체교섭국장은 “하나의 회사안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동일한 요구안으로 공동교섭을 진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이후 현대자동차가 교섭에 응하지 않을 경우 금속노조와 현대 비정규노동자들은 공동총파업을 비롯한 교섭촉구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