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노동 5법’ 중 기간제법을 사실상 포기하고 파견법을 선택했다. 배석범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이 1998년 2월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파견근로 법제화에 합의한 뒤 조직 내부 반발로 사퇴했을 정도로 파견은 노동계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대표적 쟁점이다.
담화 뒤 예상대로 노동계는 “사용자의 최대 민원인 파견법은 역시 정부가 포기하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특히 파견법 개정안 중 뿌리산업 업무에 대한 파견 허용, 하청에 대한 원청의 배려 조치를 불법파견 징표에서 배제하는 것 등에 대해 민감을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 내용 모두 “재벌의 불법파견 문제를 해소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 노동자 4명 중 1명 파견법 직·간접 영향권
파견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55세 이상 고령자와 교사·간호사·기자·보험 및 금융관리자 등 관리·전문직 중 연소득이 상위 25%(2015년 기준 5600만원 이상)인 고소득자에 대해 파견 허용 업무를 확대하는 것이다. 금형·주조·소성가공·용접·표면처리·열처리 등 제조업 근간을 이루는 뿌리산업 업무에 대해서도 파견을 허용한다. 지난해 기준 55세 이상 고령자는 344만명, 관리·전문직 중 고소득자는 73만명이다. 2013년 말 기준 뿌리산업 업체 수는 2만6013개, 종사자는 42만명이다. 직·간접적으로 파견법 영향을 받는 노동자가 전체 임금 노동자 1880만명 중 약 24%에 이르는 것이다.
■ “뿌리산업 파견 허용은 대기업의 사내하청 통한 파견 사용 우회로”
박 대통령은 뿌리산업 종사 기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파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2014년 기준 뿌리산업 업체 중에는 동우화인켐(표면처리)·다스(금형)·핸즈코퍼레이션(주조) 등 중견기업뿐 아니라 현대차 아산공장(용접)·현대위아(소성가공)·현대제철 당진공장(소성가공) 등 대기업 사업장도 포함돼 있다. 대기업이 뿌리기술 공정을 내부화하면서 이들 대기업 공장도 뿌리산업 업체로 분류된 것이다.
물론 파견법 개정안은 중소기업·중견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대기업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동계는 “대기업이 뿌리산업 업체에 특정 공정을 외주화하는 방식으로 파견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동부도 이 가능성을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확실한 방지대책을 법안에 담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오민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은 “방지대책을 검토한다고 하지만 대법원 판결이 나도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사실상 손놓고 있는 노동부가 제대로 근로감독과 시정에 나설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불법파견 징표 완화해 재벌 불법파견의 합법도급화”
파견법 개정안에는 “파견과 도급의 구별기준을 명확히 하면서도 원·하청 상생을 위해 취해지는 조치는 파견 판단 기준으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근로조건 향상, 산업재해예방, 직업능력개발 등을 위한 지원을 실시하는 경우가 구체적 사례로 제시됐다. 원청이 사내하청업체를 지원하고 싶어도 불법파견으로 판정될까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해결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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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노동계는 “재벌 사내하청을 아예 파견법의 규제도 받지 않는 도급으로 합법화해주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파견법 개정안은 법원 판례로 축적돼온 여러 징표들 중 원청이 변경하기가 쉽지 않은 계약의 내용, 계약 당사자의 적격성, 직무교육 등과 관련된 징표들은 모두 제외하고 원청인 재벌이 도급으로 꾸미기 가장 쉬운 기준들을 중심으로 판단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