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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오전 은신하던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를 나와 경찰에 자진출두 했다. 조계사 정문인 일주문 앞에서 대기하던 경찰이 한 위원장에 수갑을 채워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6개월의 수배생활 끝에 10일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지난해 12월 민주노총 사상 첫 조합원 직선제로 당선된 한 위원장이 자리를 비움에 따라 지도력 공백이 불가피해 보인다.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민주노총이 최대 고비를 맞았다.
◇한상균 위원장 "공안탄압 실체 밝히겠다"=세월호 희생자 추모집회와 노동절 대회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 위원장은 서울 종로구 조계사 관음전에 은신한 지 24일 만인 이날 오전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한 위원장은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과 함께 오전 10시25분께 관음전을 나와 대웅전으로 자리를 옮겨 절을 올린 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면담했다.
면담을 마친 한 위원장은 생명평화법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하고 민주노총에 대해 사상 유례없는 탄압을 하더라도 결코 노동개악에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며 “법정에서 광기 어린 공안탄압의 불법적 실체를 밝히고, 혼돈에 빠진 불의한 정권의 민낯을 까발리겠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이어 도법 스님과 함께 일주문을 거쳐 조계사 밖으로 나와 경찰 호송차에 올라탔다. 경찰은 곧바로 체포영장을 집행한 뒤 한 위원장을 남대문경찰서로 이송했다. 경찰은 11일께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밝힌 한 위원장의 혐의는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과 일반교통방해·특수공무집행방해·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특수공용물건 손상 등이다.
경찰은 지난달 14일 열린 1차 민중총궐기 집회와 관련해 한 위원장이 경찰을 상대로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도 공동정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더 나아가 한 위원장에 대해 형법상 소요죄 적용까지 검토 중이다.
검경의 강경한 태도를 감안하면 민주노총의 지도력 공백상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달 21일 경찰이 민주노총과 산하조직을 상대로 일제히 압수수색을 벌인 터라, 수사 과정에서 한 위원장 혐의가 추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다. 수사 대상이 민주노총 임원 전체로 확대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은 지난 9일 밤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한 위원장 거취 문제와 향후 조직체계를 논의했다. 이날 회의는 한 위원장 거취를 표결에 부치자는 의견이 나올 만큼 격렬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여야가 임시국회에서 노동 5대 법안을 합의해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은 데다, 민주노총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16일 총파업 돌입을 예고한 비상 상황에서 위원장 공백은 투쟁 구심력 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16일 총파업 성사 매진"=한 위원장 자진출두에 따라 당분간 최종진 수석부위원장이 위원장 직무대행 자격으로 조직을 이끌게 됐다. 경찰 수사 대상이 수석부위원장과 사무총장까지 확대돼 지도력 공백이 커지면 한 위원장이 5명의 부위원장 중 1명을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지명해 집행을 이어 가게 된다.
민주노총 규약은 금품수수나 성폭력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지도부가 총사퇴할 경우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투쟁 중 구속되는 경우는 비대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남아 있는 임원진을 중심으로 한 지도력·조직력 재정비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민주노총의 지도부 공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초대 권영길 위원장을 비롯해 3기 단병호 위원장·5기 이석행 위원장·7기 김영훈 위원장 시절에도 조직 안팎 문제로 지도부 공백 사태가 빚어졌는데, 민주노총은 직무대행 또는 비대위 체제로 조직적 위기를 극복했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한상균 위원장 출두로 지도력 약화에 따른 조직적 어려움이 없지 않겠지만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노동개악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라며 “민주노총은 정부의 노동개악이 가져올 국민적 재앙을 적극적으로 알려 내는 동시에 16일 총파업 성사와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