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비판은 사라졌다. 사람들은 바보가 됐다. 권력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최근 천주교정의평화연대는 민주화 운운하는 원로들의 말씀을 옮겨 유시민과 김어준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뉴스를 검색하다 나는 성명서 전문을 읽고 놀랐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정의 실현에 앞장서 온 단체에서 성명서로 공개적으로 유시민과 김어준을 지목해 비판 성명을 발표하다니.
유시민이 기준 없이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해서 진영을 분열시켰다, 뉴스공장 김어준의 언론권력 행패가 지나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가지고 놀려고 한다, 성명서는 이런 취지였다.
어차피 김어준 뉴스공장은 유튜브방송이고, 기성언론과 달리 허가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방송시설 없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자유경쟁 시장이니 뉴이재명이든 원로분들이든 누구든 이 대통령을 칭송하는 이들이 더욱 분발해야 할 문제다. 그래서 김어준 뉴스공장 이상의 영향력을 갖추면 될 일인 것이겠다. 굳이 내가 참견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유시민에 대한 비판은 곰곰이 새길 만하다. 기준 없이 비난하지 말고 기준을 가지고 비판하라니 옳은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주교정의평화연대가 하라는 대로 해봐야겠다. 내 관심사인 노동을 기준으로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한다면 적어도 천주교정의평화연대로부터는 비난받지 않을 테니 말이다.
2. “불평등을 줄이고 노동의 존엄을 지킬 것인가. 인공지능(AI)과 반도체와 첨단산업이 성장하더라도 노동자가 더 불안해지고 지역이 쇠퇴한다면 그것을 진보라 부르기는 어렵다.”
기준 없는 유시민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비판하면서 천주교정의평화연대는 이렇게 노동을 비판 기준의 하나로 들어서 대통령을 비판해야 한다고 성명서에서 밝혔다.
이 질문은 AI와 반도체와 첨단산업이 성장으로 노동자가 더 불안해져 존엄을 지킬 수 있을지 하는 깊은 우려를 갖고 던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
현대차 노조가 사측이 공장현장에 로봇을 대거 투입하려는 것에 반발해서 고용유지 등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며 교섭을 요구하고 이를 위해 파업도 불사할 것이라고 했다고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 등에서 공개적으로 로봇 투입을 노조가 막는다면서 비난했다. 현대차뿐이겠는가. 제조업은 로봇은 물론, AI 도입으로 노동자의 일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재명 대통령은 이 나라 노동자들 모두에 대해서 한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서 일하던 노동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식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로봇, AI에 일자리를 잃은 채 노동자는 묵묵히 받아들이며 사업장을 떠나야 한다는 것인가. 엄청난 규모로 이익을 실현하는 사업장에서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 필요도 없는데도, 다른 일이라도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교섭하고 쟁의할 수도 없다는 것인가.
노동자는 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인간으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생계비를 마련해 왔다. 그걸 이 나라가 기본소득이라도 도입해서 국가 예산으로 지급하기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도대체 그렇지 않으니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길까 봐 노동자는 몹시 부ㄹ안한 것이다. 그래서 그걸 걱정하는 노조에 대통령으로서 대책없이 비난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적어도 대통령의 권한을 가지고 이 나라에서 노동자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고 이재명 대통령은 노동자에게 말하면서 행동했어야 했다.
그리고 삼성전자에서 광주공장 건설에 대해서 노조가 교섭을 요구하고 파업할 수도 있다고 했다고 이 나라는 난리가 났다. 누구보다도 이재명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국무회의 등에서 온 국민이 들으라고 이런 노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며 쟁의 대상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에게는 노골적으로 노동쟁의 사항이 아니게 시행지침으로 만들어 발표하도록 주문했다.
광주공장이 건설되면 그곳에 조합원을 전환배치할 수 있다. 그래서 노조는 교섭을 요구하고 요구 관철을 위해 파업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대통령이 공장 건설에 반대해서 노조가 파업할 수가 있는 것이냐고 비난하며 노동부 장관에게 노란봉투법 시행지침을 만들어 공장 건설은 노동쟁의 사항에 해당하지 않아 교섭과 쟁의할 수 없다고 발표하게 했다.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사용자 자본을 편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로봇 투입, AI 도입 등으로 사용자 자본이 얻게 될 엄청난 이익의 일부에 대해 노동자가 성과급 지급을 요구해서 교섭하고 파업하는 걸 두고서도 야단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업 이익 등 실적에 연동하는 경영성과급을 요구해서 노조가 교섭하고 파업할 수 있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국무회의 등에서 공개 발언했다. 노동부 장관에게 개정 노조법 시행지침을 통해 노동쟁의 사항에 해당하지 않고, 노조는 교섭과 쟁의할 수 없도록 지시했다.
로봇과 AI는 해당 공정에서 일해온 숙련된 노동자의 움직임 등을 학습해서 현장에 투입되고 작업에 활용되는 것이다. 제조업을 예를 들면 해당 공정, 업무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이루 헤아리기 어려운 수많은 동작 등을 기술데이터로 취합해서 사용자가 로봇, AI에 활용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 당연히 노동자는 요구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의 기술을 탈취해서 노동자를 해당 공정에서 배제하는 걸 노동자가 그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인가. 해당 노동자에겐 무엇보다도 중요한 노동조건에 관한 것이라서 교섭하고 쟁의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아직 법원 판례가 없다면, 정부가 노동부 시행 기준을 마련해서라도 우리 노동현장에서 노동자가 보호될 수 있도록 할 일이다. 그 시행 기준에서 교섭하고 쟁의할 수 있음을 명확히 밝혀서 노동자가 사용자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나아가 입법이 필요하다면 추진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노동자에게 임금에 상응하는 기술료를 주도록 하든지.
3. 노동의 기준으로 대통령을 비판하자니 나는 지금까지 칼럼에서 했던 말을 또다시 하고 말았다. 사실 어디 노동의 기준 하나로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노동자도 국민이니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자 주인으로서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한다.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그 어떤 기준보다 오늘은 윤석열 검찰정권이 벌인 12·3 내란을 청산하는 걸 어떤 기준보다 앞세워야 한다.
대통령이 무장한 군경을 동원해서 국회를 침탈했다. 국회 기능을 정지시키고 위헌, 위법한 비상계엄을 통해 입법권과 사법권까지 행사하려 한,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이었다. 민주공화국을 짓밟은 12·3 내란이 일어난 지 1년10개월이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한데 어찌된 일인가. 내란사건에 대한 특별검사가 구성돼 수사하고, 법원에서 내란재판부까지 설치돼 재판하는 것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다. 도대체 내란 심판과 청산이 무엇에 대해서 어떻게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내란을 저지른 대통령 윤석열을 탄핵하고,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외쳤던 내란세력 척결의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통합과 실용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에 파묻혀 철 지난 소리로 취급당할 지경이다. 오늘 이 나라는 공화국을 부정한 내란을 심판하고 청산하는 데 진정인가. 고작해야 윤석열 등 당시 비상계엄의 선포에 직접 관여했던 대통령과 총리, 장관들과 그 비상계엄을 실행하기 위해 국회 등에 동원됐던 군경의 몇몇 책임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수사하고 재판하고 있다는 것 말고 12·3 내란에 대한 청산은 없다. 사실 뭘 청산해야 하는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이재명 정부는 마땅히 민주공화국을 짓밟은 내란세력을 척결하고 그 내란의 정치, 경제, 사회적 뿌리를 뽑아 다시는 이 대한민국을 감히 짓밟을 수 없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걸 해야 할 권력은 통합을 말하면서 실용을 내세우더니 특검 수사와 법원 재판 말고 자신의 권한으로 해야 할 내란 청산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윤석열 검찰정권에 충성을 다했던 검사까지 가리지 않고 수사 실력 운운하면서 추어올리며 고위직에 임명해서 사용하고 있으니 내란 청산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철저한 검찰 개혁은 대통령에 의해 번번이 발목이 잡혔다. 그래서 유시민을 포함해서 비판했던 것인데, 그걸 두고서 기준 없이 대통령을 비판해서 진영을 분열시킨다고 비난하다니. 더구나 민주화와 정의 실현을 위해 달려온 단체까지 나서 성명서까지 발표하다니. 오늘 이 나라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날카롭던 비판들은 사라지고 찾아보기 어렵다. 현명했던 사람들은 바보가 되고 있다. 권력의 욕망은 눈을 가리고 세상을 온통 바보로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