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바람을 타고 급격히 증가한 기업 구조조정이 우리사회의 경제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수익성 하락→경상수지 적자 확대와 외채 누적→주식시장 하락과 자본 이탈→환율 인상→기업의 채무부담 증가→대규모 적자→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수익성 회복’으로 이어지는 위기의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23일 오후 ‘정리해고 반대 및 희생자 추모위원회’ 주최로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강당에서 열린 ‘정리해고 실태진단과 올바른 해법 모색을 위한 긴급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박하순 노동자운동연구소 소장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기업에 약간의 이윤율 증대를 가져다줬을 뿐 노동자들과 우리사회에는 큰 피해를 입혔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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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일 오후 민주노총이 정리해고 실태진단과 해법모색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노동과세계 |
1960년부터 2009년까지 우리나라 기업들의 유형고정자산 영업이익률은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 직후인 98년부터 2009년 사이 소폭의 반등이 이뤄진다. 구조조정이 활발하게 진행된 이때 기업들은 소폭의 이윤율 상승효과를 본 셈이다.
그렇다면 구조조정을 통해 발생한 이윤율은 투자 확대나 고용 증대로 이어졌을까. 한국은행의 실질설비투자 추이 현황에 따르면 기업들의 투자 규모는 98년 대폭 줄었다가 2004년에 들어서야 외환위기 직전인 96년 수준을 회복했다. 그 뒤 2007년까지 늘어나던 설비투자 규모는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박 소장은 “투자 부진으로 인한 축적 둔화가 잠재성장률 저하를 낳고, 국민경제는 저성장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고용 증대가 이뤄질 수 없고, 결국 투자 부진은 또 다른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에 따른 자본의 이익률 상승은 가계부채 증대로 이어졌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가계소득이 거의 늘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김대중 정부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을 내놓았고, 이때 저리의 주택대출이 급격히 늘었다. 여기에 신용카드 발급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가계빚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결국 자본의 이익률을 제고시킨 위기극복 방식이 가계빚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노동자의 삶이 금융시장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가계부채 증가는 가계저축 하락으로 나타났다. 90년대 20%대 초반이었던 가계저축률은 2009년 3% 내외로 급격하게 낮아졌다.
자본의 이익률이 높아지는 사이 나라빚도 늘었다. 외환위기 이후 재정적자를 통한 경기부양으로 인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97년 11.9%였던 국가채무비율은 98년 16%로 늘었고, 성장이 저하된 2000년대 중반에도 지속적으로 늘었다.
한편 외환위기 이후 인력 구조조정과 금융시장 자유화가 병행됐다. 한국의 주식이 폭락한 뒤 떠났던 초국적 자본들이 다시 들어왔다. 이들은 한국의 우량기업 지분을 사들여 구조조정을 했고, 이후 해당 기업의 주가가 폭등하면서 엄청난 투자수익을 챙겼다. 박 소장은 “초국적 자본의 한국경제 지배는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투자부진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가 위기의 메커니즘을 내장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위기가 구조화된 상황에서 노동자를 내쫓아 이익률을 높이는 방식의 정리해고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 소장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금융 세계화로의 편입 심화는 한국경제를 근본적으로 회생시키는 길이 아니었다”며 “투자는 부진해졌고, 고용 증대는 없었으며, 위기는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은회 기자. 매일노동뉴스(labortoday.co.kr) 기사제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