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면 전체가 통유리로 채워진 15층 높이의 깔끔한 아파트형공장 건물들. 잘 정돈된 도로와 건물 사이사이에 마련된 쉼터까지. 굴뚝과 생산직 노동자로 대표되던 옛 구로공단이 탈바꿈한 서울디지털단지는 그 이름뿐 아니라 겉모습도 ‘일할 맛’나게 변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과연 일할 맛나게 살고 있을까?
“저희는 시급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절대 고정이에요. 10원이라도 올리는 건….”
“원서를 넣으면 회사근처에서 파견업체 직원이 저희를 모아서 회사로 데려가는 거죠. 저는 파견회사 사무실이 어딘지도 몰라요.”
“많이 아파서 잠깐 병원을 다녀오면 그 시간만큼 임금을 빼요. 5분만 지각해도 0.5시간 빼는데요. 웬만하면 병가는 엄두도 못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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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동 한국산업단지공단 앞에서 <노동자의 미래>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디지털단지 내 노동자 13만명의 권익보호를 위한 활동에 본격 나설 것을 천명했다.김상민 |
서울남부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가 공개한 이곳 노동자들의 증언이다. <노동자의 미래>는 서울디지털단지 내 노동자 13만명의 권익보호 활동을 위해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비롯해 노동안전보건단체, 노동법률지원 단체 등이 모여 만든 조직이다.
<노동자의 미래>에 함께하고 있는 구자현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장은 “단지 내 노동자의 절반가량인 제조업 종사자들의 임금은 법정최저임금 4,320원 수준에 맞춰져 있다”고 말한다. 한 달을 꼬박 일해도 90만원밖에 안 되는 저임금이다 보니 매일 2~3시간의 연장근무와 주말 및 휴일근무를 해야 간신히 120~13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이마저도 대부분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얻은 일자리다. 이 때문에 이 지역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IT산업과 사무직의 처지도 비참하긴 마찬가지다. 구 지회장은 “IT산업과 사무직 노동자들은 매일 밤 11시, 12시까지 야근에 시달리지만 연장, 야간근로 수당이 연봉에 포함돼 있어 돈을 더 받지 못한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퇴직금, 연월차 수당까지 임금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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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자현 남부지역지회장 |
업장에 노동조합이라도 만들면 노동자의 권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대부분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인데다 평균 종사자가 12명밖에 안 되는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처지라 쉽지 않다. 사용자는 폐업과 해고를 반복하며 손쉽게 노조를 파괴한다.
결국 이곳 공단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일개 기업이 아닌 공단 차원으로 더 크게 뭉칠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미래>는 그래서 만든 조직이다. 18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동 한국산업단지공단 앞에서 <노동자의 미래>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디지털단지 내 노동자 13만명의 권익보호를 위한 활동에 본격 나설 것을 천명했다.
<노동자의 미래>는 민주노총 2기 전략조직화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전략조직화사업은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 노동자의 절대다수인 중소 영세 비정규직들을 노동조합으로 묶어내기 위해 지난 2005년 조합원들로부터 ‘미조직 사업을 위한 50억 기금’을 모집하면서 시작됐다. 이날 출범식에 참가한 이재웅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그간 중소 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민주노총 사업은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왔었다”며 “지금까지의 한계를 극복해 서울디지털단지에서 새로 시작하는 이번 사업의 성과는 이 지역 노동자의 미래뿐 아니라, 민주노총과 전국의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자의 미래>는 우선 서울디지털단지에서 지속적인 무료 법률상담과 의료상담을 통해 지역 노동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혀갈 계획이다. 더불어 캠페인, 문화제, 공개강좌 등 노동자 권리에 대한 정보 제공 사업도 벌인다. 3~4월에는 이 지역 임금, 노동조건, 건강권 실태조사도 대대적으로 실시한다. <노동자의 미래>는 이 실태조사 결과를 여론화 하면서, 공단 노동자들의 생활임금 쟁취와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노동자의 미래> 활동은 올 한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공단지역 노동자들이 단결해 조직적인 힘으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장기적 목표다. 이를 위해 <노동자의 미래>는 서울남부노동복지센터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이 센터는 노동자들의 쉼터이자 각종 소모임, 교육 등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다. <노동자의 미래>는 이 공간이 장기적으로 노동자가 단결을 도모할 수 있는 곳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